오피니언 사설

무의미한 이념논쟁 그만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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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각 정당 내부에서 정체성 논란이 한창이다. 한나라당의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많은 발언자가 나서 "한 클릭 왼쪽으로 옮기자"는 주장과 "보수정당으로 똑바로 가면 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동영 의장의 '실용정당'발언에 대해 개혁당 출신 인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우리는 각 정당이 이 같은 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논쟁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이나 노선 그 자체를 놓고 '너는 진보가 좋다고 하나, 나는 보수가 좋다'는 식의 논쟁은 말장난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의 개념을 놓고 그렇게 공허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말로써 갈등만 만들 뿐이며, 따라서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각 정당은 상대적인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 분포돼 있다. 진보와 보수도 어느 정도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각 당의 진영이 진보냐 보수냐로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정당들이 그런 공허한 개념에 매달리기보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떤 정책에 대해 어떤 정당이 이런저런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그 정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각 정당은 그런 구체적 현실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해 나감으로써 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이런 논쟁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별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한심하다. 일자리를 어떻게 늘리고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하느냐, 보건.환경 등의 구체적인 정책과 법안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지 내 이념에 맞는 정책이 무엇이냐를 찾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각자의 견해가 표출돼야 한다.

이런 논쟁에는 다른 저의도 엿보인다. 지역 간 대결심리 또는 당내 주도권 쟁탈전의 성격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내의 편가르기를 위해 이념의 잣대가 이용된다면 이는 퇴행적인, 허구적인 이념논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