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조선왕조실록" 영문版도 나왔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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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논어』『맹자』『사기』『팔만대장경』『칸트전집』『헤겔전집』등 인류가 남긴 대작들을 볼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책을 쓴 사상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 출판을 담당했던 선조들의 고투가 눈 앞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런 저작물중 특히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책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무려 8백87책.1천8백66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이를 쓰는데동원됐을 수많은 사관(史官)들,그리고 이를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엄청난 작업이었을까.
더구나 『조선왕조실록』은 5백년간의 역사를 엄격하고 공정하게쓰기 위해 반드시 임금이 죽은 후에 춘추관이 주관해 기록했다.
따라서 왕조실록은 크고 작은 왕실 일과 왕의 비행은 물론 정치.경제.풍속.지리등 온갖 박물학까지 망라된 가위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일제도 그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1914년 『조선왕조실록』을약탈해갔던 것이다.
원래 실록은 천재지변에도 유실되지 않도록 전주.강화.오대산.
태백산등에 각각 4대 사고(史庫)를 두고 있었다.
일제는 그중 한 사고로부터 헌병과 인근 주민을 동원해 무려 8일간이나 항구로 이 보물을 실어내갔다고 한다.
이렇게 현해탄을 건너간 왕조실록은 동경제대에 기증됐는데 이름하여 데라우치 총독의 한.일합방 기념선물이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그럴듯하고 엄청난 선물인가.
그러나 이 왕조실록은 1923년 관동대지진때 불타버려 영원히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인도 안타까워한 이 책의 최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이야말해 무엇할까.
최근 어느 회사에서 이 엄청난 책을 CD롬으로 출판했다.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더구나 이를 바탕으로 쉽게 풀어쓴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란 책이 나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방증하는 사건이 아닌가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내친김에 영문판 『조선왕조실록』까지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욕심을 가져본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이 한권이 외교관 수십명의 역할을 거뜬히 해낼수 있지 않을까.
최청수 자작나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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