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두 점 머리, 석 점 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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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본선 32강전>
○·구 리 9단(중국) ●·진시영 3단(한국)

제6보(62∼76)=62는 일견 기분 만점의 자리다. “두 점 머리는 죽어도 두드려라”는 기훈을 생각하면 신바람이 절로 난다. 한데 구리 9단은 이 수를 두는 데 오래 망설였다. ‘참고도’ 백1이 워낙 큰 곳인 데다(다음 A로 막는 수도 거의 선수다) 62의 현실적 가치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우선 62는 흑▲ 두 점이 요석이 아니라서 그리 짜릿한 급소가 아니고 집도 몇 집 생기지 않는다. 다만 흑이 이곳을 늘면 우하 일대가 상당한 폼을 취하게 되고, 그걸 견제하려면 머리를 좀 썩여야 한다. 62는 말하자면 쉽게 가자는 수. 싸움꾼 구리가 편함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한 가지를 시사한다. 그는 형세를 좋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구리는 피가 뜨거운 사람. 잠시 다른 판을 보고 왔더니 어느새 국면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다.

구리가 66, 68로 도발하자 진시영 3단이 69로 툭 끊어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72는 일본식 미학으로는 B가 틀이지만 구리는 그대로 밀어붙인다. 날렵함 대신 밀착 대형을 즐기는 전형적인 구리 스타일이다.

76은 귀중한 수. 이쯤 해서 C로 수비하고 싶지만 흑에게 이곳 석 점 머리 급소를 눌리면 백 돌은 쪼그라지고 흑 돌은 피어난다. 두 점 머리는 아주 급소고, 석 점 머리는 상당한 급소. 넉 점 머리는 여유가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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