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한탕 자본주의’의 검은 피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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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지만 누가 누구를 탓하랴. 모두가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허황된 유포리아(euphoria·행복감)에 취해 탐욕의 무한질주를 계속해 온 결과인 것을. 이대로 가면 언젠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자명한 위험에는 눈을 감고, 너도나도 눈앞의 이익을 좇아 투기의 가속페달을 밟아온 결과인 것을….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자본주의,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 자본주의, 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머니게임 자본주의, 돈만 되면 양잿물도 팔아먹는 파생상품 자본주의가 화려한 가면을 벗고, 흉칙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진작 ‘먹튀’를 못하고 상투를 잡은 불쌍한 개미들에 이어 최후의 순간까지 탐욕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기관들이 빚잔치와 돈잔치의 피날레에 몰리면서 하나둘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대한 시장의 복수인가.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2001년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 2년 만에 6.5%에서 1%까지 떨어뜨렸다. 값싼 은행돈으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부동산 수요가 부동산 붐에 불을 댕겼고, 이는 다시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부풀렸다. 너나 없이 은행빚을 내 부동산 투자에 나섰고, 추가적인 가격상승을 예상한 은행들은 상환 능력을 무시한 채 부동산담보대출을 화끈하게 풀었다.

투자은행들은 첨단 금융공학 기법으로 ‘리스크 제로’에 도전한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마구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이를 다시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만든 파생금융상품에 부채담보부채권(CDO)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시장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부동산 붐이 계속되는 한 모두가 행복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루 같은 가공의 행복이었고, 그 행복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쌓이기 시작한 대출금 연체는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렀다. 상환 능력 없이 집을 산 가계의 파산을 필두로, 그 파장이 초대형 투자은행들의 줄도산과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위기의 역사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예측대로라면 그가 『자본론』 집필에 착수한 1857년 이미 자본주의는 망했어야 한다. 그 후에도 숱하게 망했어야 하고, 진작 세계 혁명이 일어났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고, 여태껏 살아남았다. 자기 조정과 진화가 자본주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는 안 된다. 한탕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난무하는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 상식 수준의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눈먼 탐욕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버락 오바마나 존 매케인, 둘 중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제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는 물론이고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오늘의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실려 끝없는 추락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