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인 外貌이용 회교권돌며 국적세탁-정수일 위장활동 顚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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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고정간첩 정수일(鄭守一.62)은 함경북도 명천출신 농부의 아들로 1934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태어났다.
40~55년 사이 중국 옌볜(延邊)에서 고급중학교 과정을 마친 鄭은 베이징(北京)대 아랍어과를 졸업,55년부터 3년간 이집트 카이로대 아랍어문학과에서 유학했다.
뒤이어 중국 외교부 서아시아및 아프리카국과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그러나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차별정책에 불만을 가진 鄭은 62년 북한국적을 취득,63년 6월 평양에서 평양국제관계대학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아랍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북한 노동당 발탁으로 74년 9월부터 노동당 연락부에 소환돼 79년 1월까지 간첩교육을 받았다.
그뒤 인텔리 간첩으로 남한에 침투하기 위해 중동인 이미지를 가진 자신의 외모를 이용,아랍계 외국인으로 위장해 레바논.튀니지.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을 돌며 레바논과 필리핀 국적을 차례로취득했다.
「이철수」란 이름으로 79년 1월 레바논에 도착한 鄭은 친북단체인 「레바논-조선 친선협회」 도움으로 실존하는 「무하마드 깐수」라는 사람의 신원사항을 이용해 국적을 취득했다.깐수는 당시 鄭의 나이보다 12세나 어린 21세였다.
베이루트 아랍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鄭은 여권을 발급받아 튀니지대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등록하고 석사학위를 다시취득했다.
81년 9월 북한으로 돌아간 鄭은 82년 5월 인도네시아 주재 호주대사관을 통해 호주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다시 파푸아뉴기니 국적을 취득하려다 실패했다.
이어 84년 2월 「필리핀 이슬람선교회」 도움으로 필리핀 국적취득에 성공,2개월 뒤인 4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유학생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침투했다.
이 과정에서 鄭은 말레이시아대 강사로 활동하는등 위장활동을 폈다.이때 한국인 金모 교수에게 접근,친분을 쌓은 다음 귀국한金교수에게 연세대 한국어학당 입학허가서를 부탁,유학비자를 받았다. 84년 4월29일 한국침투에 성공한 鄭은 치밀하고 완벽한위장책으로 8년이나 함께 살아온 부인 尹모(45)씨등 주위사람을 감쪽같이 속여왔다.
84년 9월 단국대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鄭은 89년 12월 당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아랍의 교류가 9세기 이전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미 활발했다는 내용의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 관계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 다.
鄭은 88년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명돼 동서문화교류사 등을 강의하며 이 분야 전문가로 지위를 굳혔으며,86년 아시안게임때 알게된 한국외국어대 아랍어 강사의 소개로 서울 모종합병원 간호사 尹씨와 국제결혼,장기체류할 수 있는 합법적 신 분을 확보했다. 90년부터는 한국외국어대학 동시통역대학원에도 출강,활발한활동을 통해 유명인사가 됐다.특히 그는 항상 밤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있어 「공부하는 교수」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교수신분을 활용,정계.언론계.군사분야 등 각계각층 전 문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鄭은 슬하에 베이징무용대학 출신으로 현재 평양 모란봉극단 안무지도자인 처(박광숙.61)와 3녀를 북한에 두고 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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