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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주 펀드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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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우리 펀드는 리먼브러더스 주식이 한 주도 없다.”

미국발 폭풍이 증시를 휩쓴 16일 주요 글로벌 금융주 펀드 운용사는 일제히 선 긋기에 나섰다. 묻기도 전에 리먼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주식을 들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메릴린치 주식을 보유한 곳도 최근 비중을 확 낮췄거나 원래 적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글로벌 금융주 펀드는 대부분 올해 들어서만 원금을 20~30%씩 까먹었다. 그나마 현재 수익률은 지난주 말 주가까지만 반영된 상태여서 전 세계 금융주가 곤두박질한 이번 주 상황이 반영되면 추가 하락이 불 보듯 뻔하다.


◆펀드 보유 종목 살펴야=해외 금융주에 투자한다는 점은 같지만 펀드에 따라 들고 있는 종목은 차이가 크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 주식 비중이 높은 펀드일수록 내상이 더 심하다. 한국운용의 ‘월드와이드월스트리트투자은행주식1(A)’은 올 들어서만 30% 손실을 냈다. 지난해 6월 설정 이후를 따져보면 원금이 44% 날아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 투자은행(IB) 주식을 많이 샀기 때문이다. 7월 초 기준이긴 하지만 보유 비중 상위 5개 종목 안에 골드먼삭스(8.3%)·모건스탠리(8.1%)·메릴린치(6.9%) 같은 주요 IB가 3개나 들어 있다. 한국운용 측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넘어간 메릴린치의 펀드 내 비중을 최근 4.5%로 낮췄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저평가된 글로벌 금융주 투자로 이익을 내겠다며 등장한 ‘하나UBS글로벌금융주의귀환주식’도 설정 이후 20% 가까운 손실을 냈다.

‘미래에셋솔로몬A/P파이낸셜서비스주식’은 호주 금융주 비중이 높다. 7월 기준으로 보유 종목 상위 5개가 모두 호주 회사다. 국가별로는 호주(40%)와 중국·홍콩(27%)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 펀드에 투자한 사람은 미국·유럽보다 호주·중국 금융사의 주가 추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전망은 아직 ‘깜깜’=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미국 금융위기가 불꺼진 뒤 전 세계 은행(투자은행 포함)들이 기록한 손실은 5139억 달러(약 597조원)에 달한다. 이 중 자본 확충이 이뤄진 것은 3624억 달러 정도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진 것도 추가 자본 조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함께 어려워지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고 있는 것도 변수다.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부동산이 휘청거리면 돈을 꿔준 금융사도 함께 흔들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토러스투자증권 김승현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금융주가 그간 쌓인 악재를 단기간에 털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좀 더 기다려 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장기 투자할 생각이 아니라면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손실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제로인 이수진 연구원은 “최소 1~2년 이상 투자할 생각이 아니라면 주가가 반등할 때마다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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