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근로자 은퇴하면 생활자금 21%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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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94년 하나은행, 2000년 미래에셋증권 홍보팀장, 2004년~ 피델리티 자산운용 마케팅 이사

포브스코리아피델리티 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로 ‘피델리티 은퇴준비지수’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한국이 미국, 홍콩, 일본 등에 비해 은퇴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일 년간 피델리티 은퇴준비지수 발표를 준비한 최기훈(40) 피델리티 자산운용 마케팅 이사에게서 은퇴 준비의 필요성과 투자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은퇴는 이전 생활과의 단절로 다가온다. 은퇴자는 다니던 직장과 어울리던 회사 사람들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스스로의 생활주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급여와의 결별이다. 크건 작건 다달이 들어오던 일정 수입이 한순간에 끊기는 것이다.

은퇴 후 소득은 은퇴 전 준비에 비례한다. 미리미리 대비한 사람은 은퇴 전 소득에는 미치지 못해도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소득원을 갖춰 놓을 수 있다.

은퇴를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가늠하는 지수가 있다. 올해 7월에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피델리티 은퇴준비지수’다. 피델리티 자산운용 마케팅팀의 최기훈 이사가 지난 일 년간 이 지수를 준비하고 조사했다. 최 이사는 앞으로 피델리티 자산운용에서 진행하는 은퇴 관련 포럼과 사업을 맡을 예정이다.

한국의 은퇴준비지수는 어느 수준일까? 최 이사는 “현재 국내 근로자가 은퇴를 하면 생활자금이 21%포인트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은퇴준비지수는 세 가지 수치를 함께 가리킨다. 우선 은퇴 후 예상되는 생활비가 은퇴 직전 소득 대비 몇 %인지를 나타내는 목표소득대체율이 있다.

둘째, 수치는 은퇴 후 소득이 은퇴 직전 소득 대비 몇 %인지를 계산한 은퇴소득대체율이다. 두 비율의 차이가 은퇴준비 격차다. 한국의 은퇴준비격차가 21%포인트라는 것은 은퇴 후엔 은퇴 직전 누리던 생활에서 최대 21%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은퇴 후 예상되는 생활비는 직전 소득 대비 62%로, 은퇴 후 예상되는 소득은 직전 소득의 41%로 조사됐다.

최 이사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근로자의 은퇴 직전 연간 소득이 5000만원이라고 한다면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는 연간 3100만원인데 은퇴 후 매달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25만원에 불과합니다. 매년 1050만원, 즉 매달 87만5000원이 부족한 거죠. 은퇴준비지수는 이렇게 자신의 부족한 자금을 예측해서 미리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피델리티는 지난해 미국, 영국, 독일, 일본에서 은퇴준비지수를 발표했고, 올해 한국을 비롯해 홍콩과 대만이 차례로 발표해 나라 간 비교가 가능하다.

최 이사는 “한국의 은퇴 후 예상되는 소득의 직전 소득 대비 백분율 41%는 미국 58%, 독일 50%, 영국 50%, 일본 47%, 대만·홍콩 43%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며 “한국이 상대적으로 은퇴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한국보다 은퇴에 더 대비하고 있지만 고령 인구가 늘면서 점차 문제가 심각해지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이 제로 금리에 가까운 은행에 몰리면서 투자 수익이 낮습니다. 앞으로 평균 수명이 87세인 일본 여성들은 노후를 보장할 길이 없다고 하네요. 문제는 한국의 고령 사회 진입 속도가 일본보다 더 빠를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죠. 일본이 65세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데 20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14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 이사는 “한국이 고령 사회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20, 30대의 젊은 사람들은 40, 50대보다 평균 수명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길어진 수명만큼 은퇴 후 감당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진다.

또 노후 준비가 빠를수록 초기 은퇴자금과 투자 위험이 작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은퇴까지 20년이 남았다면 매달 일정 금액만 꾸준히 투자해도 목돈을 만들 수 있는데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 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노(老)테크는 자신의 연령대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20, 30대엔 주식형 적립식펀드 위주로 투자해 고수익을 노려 볼 만합니다. 대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투자 위험이 높은 상품을 피하고, 채권 등 안전한 투자처로 옮겨 노후자금을 손실 없이 잘 관리해야 합니다.”

투자 상품을 고를 땐 자신의 투자 성향은 물론 은퇴 이후 생활수준, 투자자금, 예상 은퇴 시점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 중 주식형 적립식펀드는 기간을 길게 갖고 매달 일정 금액을 투자하기 때문에 부담이 작다.

특히 노후 준비에 안성맞춤인 라이프사이클 펀드가 있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정해진 투자 기간 동안 목표 수익률 달성 및 최소한의 투자 위험을 목표로 투자자의 연령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자동적으로 재구성해 주는 펀드입니다.”

이 펀드의 최대 장점은 펀드매니저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짜 준다는 점이다. 고객 나이가 젊었을 때는 주식 투자 비중을 높여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해가 갈수록 주식, 채권, 현금 등을 적절히 조정해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로 재조정한다.

만기 무렵엔 주식 편입 비중을 낮춰서 위험을 최대한 줄인다. 이때 운용 수수료는 시간이 갈수록 낮아진다. 주식형에서 혼합형, 채권형으로 투자 성격이 점차 변하기 때문이다.

피델리티가 운용하는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각각 2010년과 2020년이 투자 만기인 ‘피델리티 2010년 목표펀드’와 ‘피델리티 2020년 목표펀드’가 있다.

‘피델리티 2010년 목표 펀드’는 주식 52%, 채권 22%, 단기 금융상품 26%로 다양하게 자산이 분산된 반면, 10년 이상 투자 기간이 남은 ‘피델리티 2020년 목표펀드’는 펀드자산의 약 90%를 주식에 투자해 공격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두 펀드 모두 2002년 5월에 설정됐고, 최근 5년 수익률(2008년 7월 7일 기준)은 각각 48.13%, 67.43%를 기록하고 있다.

최 이사는 “앞으로 주기적으로 피델리티 은퇴준비지수를 발표하고, 연말까지 개인별로 은퇴 설계가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염지현 기자·사진 안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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