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협박의 도구로 악용되는 포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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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두 달 전쯤, 촛불시위가 거의 수그러들었을 무렵 만났던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 A씨가 농담처럼 물었다.

당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같은 곳엔 중앙일보와 조선·동아에 광고를 하는 기업들을 전화 공격하라는 격문들로 도배가 돼 있었다. 맺힌 마음이 없는 게 아니어서 나는 포털에서 그런 선동을 하는 네티즌들을 성토했다.

A씨는 좀 다른 견해를 표시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걸 방치하며 이득을 챙기는 포털에 있다는 거였다. “포털이 기업들에 대한 협박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꽤 됐어요. 이번엔 신문사들이 대상이 됐을 뿐이죠. 기업 홍보 담당자들이 모이면 포털 때문에 못살겠다는 하소연이 봇물입니다.”

그가 들려준 사례 하나. 이름도 모를 인터넷 매체에서 전화를 걸어와 비리를 폭로한다며 5000만원을 달라고 하더란다. 자기네가 기사 쓰면 대형 포털에 올라가고 그러면 당신 회사는 박살난다면서.

“회사에 무슨 비리가 있었나 보죠?” 궁금증이 일어 슬쩍 물어봤었다. “비리는 무슨 비립니까. 완전 날조지. 하지만 아무리 엉터리 기사라도 일단 대형 포털에 올라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어른인지 애인지도 구별 안 가는 ‘네티즌’들이 달려들어 사실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온갖 욕설로 댓글을 달고, 해명을 하면 이번엔 거짓말이라고 공격해대니….”

 A씨는 하도 화가 나 협박 전화를 녹음해 놨다며 “이번엔 신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업이 누굴 신고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이런 얘길 끄집어 낸 것은 최근 또 다른 기업 홍보실에 있는 B씨로부터 똑같은 하소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 것 같았다.

“추석 때가 되니까 더 죽겠어요. 별의별 매체가 터무니없는 기사를 써놓고 광고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합니다. 대형 포털들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이런 협박기사를 막 실어버리잖아요. 그럼 삽시간에 국내외로 퍼져버리고.”

B씨는 자기 회사에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매체들이 20곳쯤 되지만 포털이 방패막이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피해는 포털 때문에 보는데 포털 측은 자기네가 쓴 기사가 아니니까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면 끝이라는 것이다. 과거 사이비 언론이 중소기업체들에 써먹던 협박이 포털 덕에 대기업한테도 가능해진 셈이다.

이런 사례를 소개하는 건 ‘포털’을 매도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매일매일 포털을 이용하고 있다. 그 편리함에 감사하고 포털이 훨씬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 기업인 구글과 당당히 맞서는 네이버 같은 국산 포털을 보면 꼭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도 경탄을 한다.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한 데 대해서는 자랑스러움도 느낀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 포털은 스스로를 되돌아 볼 때가 됐다. ‘포털 공화국’ 소리를 듣는 대한민국에서 포털들은 너무 막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는 게 세상 이치다. 80년대까지는 신문, 90년대 이후엔 방송이 잘나갔었다. 포털은 지금 전성기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털이 오래 살아 남으려면 몇 가지 꼭 지켜야 할 게 있다. 먼저 포털은 ‘거짓말 세탁기’가 되면 안 된다. 영국 정보기관 MI6에 따르면 21세기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거짓 정보가 국가 안보의 커다란 위협 요소다.

얼마 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우리도 경험했다. 과장된 정보에 기초해 조성된 공포가 사회 전체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 가는지를. 게다가 아무리 엉터리 기사라도 대형 포털에 실리면 무조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아닌가. 멀쩡한 기업들이 “포털 때문에 못살겠다”고 외치고 협박하는 게 거리낌 없는 사회가 정상일 수는 없다.

포털이 ‘증오 복사기’가 돼서도 안 될 것이다. 최근 벌어진 한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는 인터넷에서 표출된 상대국에 대한 터무니없는 증오와 분노, 악의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러다간 인터넷 때문에 전쟁이 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 포털에선 온갖 불법 복제들, 음악과 영상저작물과 기타 지적재산권에 대한 도용이 자행되고 있다. 이걸 즉각 차단해야 한다. 포털이 다양한 매체의 발전과 공존을 북돋우지 못하고 파괴와 약탈에 앞장서는 ‘어둠의 블랙홀’이 된다면 결국 포털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포털, 이젠 정말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김종혁 사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