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진퇴유곡의 金4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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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제7보 (118~142)]
白.金江根 4단 黑.曺薰鉉 9단

스포츠든 바둑이든 게임의 속성은 비정하다. 판세를 장악한 쪽은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운용이 쉽고 불리한 쪽은 가슴이 타는데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온갖 지혜와 수단을 동원해 변화를 구해봐도 먹히지 않는다. 그 요지부동의 비정함은 세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하다.

가끔 기막한 드라마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파격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의 曺9단은 과거 완전히 때가 늦어 하늘이 두쪽이 나지 않는 한 뒤 집을 수 없다는 바둑마저 몇번이나 뒤집은 일이 있다. 그것도 대개 반집 차이로. 그러니 이처럼 실력좋고 운좋은 曺9단과 마주앉아 역전의 틈새를 찾아 발바닥이 닳도록 헤매고 다니는 김강근4단은 운이 나쁘다고 봐야 한다.

曺9단의 흑▲는 이런 경우의 맥점. 한 점을 희생해 백△를 선수로 잡아내려는 수법이다. 그러나 123으로 따냈을 때 바쁘고 고단한 金4단은 A를 둘 틈도 없이 좌상으로 달려간다. 124, 126으로 흑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그리고는 다시 멀리 우변으로 가 130. 130은 보통 131 자리에 두는 법이지만 136으로 파고들기 위해 비상수단을 썼다.

이 수에 '참고도' 흑1로 두는 것은 백2로 막혀 대마가 사활에 걸려든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 바쁘게 뛰어다녀도 형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본시 백은 139 자리를 잇는게 정수다. 그러나 이런 곳을 잇고 있다가는 그냥 질 게 뻔해서 어렵사리 변화를 구하고 있지만 139를 선수로 당하자 그동안 벌어들인 게 다 없어진다. 이래저래 진퇴유곡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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