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바쁜 기관장들 불러놓고 … 악습 못 버린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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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국토해양부의 첫 업무보고가 열린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회의실의 방청석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철도공사 등 산하 기관장 20명이 장·차관의 뒷자리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회의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 전에 회의실에 도착한 이들은 오후 6시25분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9시간 가까이 이들에게 질의하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딱 ‘꿔다 놓은 보릿자루’ 그대로였다. “상급 부처의 업무보고나 국정감사 땐 배석하는 게 관례”라는 게 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릿자루 하루를 보내는 동안 결재권자가 자리 비운 기관의 업무가 어떻게 됐을지는 불 보듯 훤하다.

전날 재개된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서도 익숙한 장면이 재연됐다. 삿대질과 고성 말이다. 한나라당 김기현·권택기 의원과 민주당 김동철·강기정 의원 등은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상대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 문제는 보충질의 시간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5분’을 요구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간사 간 합의에 없던 얘기”라며 버텼다. 여·야만 바뀌었을 뿐 힘으로 소수를 누르려는 여당과 떼를 써서 원칙을 깨려는 야당 모습 그대로였다.

3일 오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3차 회의에 참석한 중소기업청과 특허청 공무원들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형수 기자]

18대 국회가 파행 신기록 행진을 끝내고 정상화된 것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지 82일 만이었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마주한 이들의 표정에선 긴 파행의 손실을 보태고 채우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구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여야가 새로 도입하기로 한 상임위 산하의 상설 소위원회 제도는 기대해 볼 만하다. 분야와 이슈가 좁혀진 소위원회가 활성화되면 장·차관과 산하 기관장들이 떼지어 다니거나 마이크를 뺏는 문제로 사생결단을 낼 일은 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원들의 의식 전환이 없으면 모든 게 공염불이다. 야권의 장외투쟁 국면에서도 등원론을 폈던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국회가 장관에게 큰소리를 쳐야 한다거나 기관의 군기를 잡겠다는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소위원회 제도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산하 기관장 출석은 해당 기관 보고가 정해진 날로 제한하고 대신 장·차관들이 관할 기관의 현안을 최대한 숙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보고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라는 얘기다.

임장혁 정치부문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