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새로운 도전 나선 ‘전곡의 여인’ 이경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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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경숙(63·사진)씨의 연습실 한쪽 벽에는 음악평론가 유신(1918~94) 선생이 87년 쓴 축하의 글이 액자 속에 걸려있다. ‘베토벤 협주곡 완주를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베토벤 협주곡 다섯 곡으로 시작된 이씨의 ‘전곡(全曲) 도전’은 88년 이후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전곡(9곡), 차이콥스키 협주곡 전곡(3곡)으로 이어졌다.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19곡)을 거쳐 미국 현대 작곡가 새뮤얼 바버의 모든 피아노 곡을 완주한 것이 2000년이다. 22년을 전곡 연주로 이어온 셈이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숱한 ‘한국 최초 완주’ 기록에 대해 “도전 의식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도전보다는 공부에 가까웠죠. 아무리 연주를 업으로 하고 있지만 한 작곡가의 모든 작품을 언제 다 쳐보겠어요. 기회가 많지 않으니 작심하고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베토벤의 다섯 개 협주곡을 이틀에 나눠 연주하고 나니 재미가 붙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나오는 부분 빼면 피아노는 사실 얼마 되지도 않아요. 힘들다기보다는 아주 재밌었죠.” 파워풀한 연주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 특유의 농담이다.

음악 평론가 한상우(1938~2005) 선생은 그에 대해 “한국에서 전문 연주자의 문을 열었다. 국내 음악계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라고 평했다. 연주만을 직업으로 하는 첫 세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의 음악 인생은 한국 음악계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60년에 유학을 떠났는데, 미국에서 스파이로 오해받은 일도 있어요.”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유학생이 드물던 때에 서울예고에 다니던 이씨는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떠났다. “그때는 미국에 가면 꼭 머리는 파마를 하고, 드레스를 입고 갔죠. 그러니 고등학생보다 한참 나이들어 보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연주로 초청받아 3년이나 되는 비자를 얻어 왔으니 분단 국가에서 온 스파이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틀 동안 붙잡혀 있었죠.” 6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실황이 미국 전역에 방송됐던 이씨는 “첫 미국행은 해프닝으로 시작했다”며 웃었다.

“70년에는 개인이 기획하는 공연이 국내에 처음으로 시도됐던 때죠.” 이씨는 공연 기획자라는 개념이 도입됐던 때도 기억하고 있다. 현재 예음문화재단의 상무이사인 김용현씨가 기획한 독주회 무대에서 이씨는 “첫 곡을 연주하러 나갔다가 아직 청중이 오지 않은 줄 알고 뒤돌아 들어오려고 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들린 작은 박수 소리에 다시 무대로 나가 선배 피아니스트 너댓 명만 모인 객석 앞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올해는 이씨에게 특별한 해다. 전곡 연주를 시작한 지 22년이 되는 해이고, 22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정리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 초 연세대 음대에서 정년퇴임한다.

하지만 그의 피아노는 여전히 울리고 있다. 20년 전 ‘공부 삼아’ 전곡 연주를 시작했던 것처럼 새로운 연주를 계속 찾고 있는 그는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두 번의 독주회를 기획했다. 9월 30일에는 작곡가 네 명의 변주곡을, 12월 5일에는 베토벤의 마지막 세 개 소나타를 연주한다. 그는 “이번에 새로 악보를 봐서 치는 곡도 있다”며 “참 끝이 없다”는 말로 퇴임 후의 계획을 대신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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