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상전벽해의 대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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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제6보 (104~117)]
白.金江根 4단 黑.曺薰鉉 9단

무릇 땅의 저 아래서 용틀임이 시작되면 땅은 변하여 바다가 되고 바다는 변하여 땅이 된다. 바둑판 역시 누군가 전력으로 뒤흔들기 시작하면 이와 같은 대변화가 일어난다. 김강근4단이 지금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덤비고 있다. 좌변은 물론이고 멀리 상변의 흑들까지 모두 잡아버리려 한다. 이들을 살리려 한다면 못살릴 것도 없겠지만 땅바닥을 기는 등 온갖 험악한 꼴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순하디 순한 金4단의 으르렁거림에 사납고 또 사나운 조훈현9단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105, 107로 그냥 밀고나가 원하는 것을 다 주고 말았다. 물론 흑도 그 대가로 하변 백대마를 잡았다.

110으로 석점을 빵 따내자 판이 새하얗게 보인다. 엄청난 바꿔치기가 일어나면서 바둑판은 상전벽해가 됐다. 흑은 백? 9점을 잡은 대신 흑▲ 10점을 포기했다. 한눈에 봐도 백의 소득이 더 커보인다. 얼핏 형세도 확 뒤집힌 듯 보인다. 曺9단은 그러나 조용하다. 얼마 전 단 한수 실수를 범했을 때 그토록 요란하게 자책했던 曺9단이 이처럼 조용해졌다는 것은 보통 수상한 일이 아니다. 무언가 만족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얘기다.

"문득 이상한 기분에 집을 세어보니 많이 져 있었다"고 金4단은 국후 말했다.

백은 자신을 내던지는 각오로 싸움을 걸었고 분명히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판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원인은 좌상귀에 있었다. 백의 영향력 아래 있던 귀가 흑집으로 뒤바뀐 것은 수십집 차이였다. 그곳에서의 출혈이 너무 커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에서 진 것이다.

귀를 내준 것은 그렇다치고 A로 뛰어나오는 수가 더 큰 문제였다. 이수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흑은 117로 붙이며 발을 뺄 틈을 주지 않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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