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월스트리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호 30면

언제나 참을성 많은 ‘소포클레스 밸류 펀드’ 투자자들에게.

최근 여러분께 글을 썼었지요. 미국 밖 시장을 초토화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 이후엔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한탄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본질 가치 이하로 급락한 듯 보이는 일부 보통주와 전환우선주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문제는 ‘어떤 월스트리트 회사에 우리 거래를 맡겨야 하느냐’더군요. 모건스탠리·씨티그룹·메릴린치·골드먼삭스 …. 어느 곳도 선뜻 내키지 않네요.

이들 유명 증권사는 위험천만하게도 모기지 증권을 여기저기 팔아치웠고, 그 결과 전 세계 투자은행에 50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안겼지요. 서브프라임 비즈니스는 통제불능 상태였습니다. UBS나 리먼브러더스 등 여느 투자은행(IB)의 총수조차 속수무책이었지요. 최근 ‘블룸버그 마켓’ 인터뷰에서 로버트 루빈(현 씨티그룹 선임고문) 전 미국 재무장관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는 트레이더와 리스크관리 전문가뿐이다”고 했습니다.

투자자들 역시 너무 세상물정을 몰랐지요. 2006년 팔린 모기지 증권이 기초자산으로 삼은 서브프라임 대출의 42%가 현재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지난주 발표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우리 수석 트레이더인 어니 니커는 이런 말을 했지요. 우린 영리해서 모기지 증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50억 달러어치의 메릴린치 지분을 산 이후에 우리 역시 지난 연말 그 주식을 샀습니다. 니커는 그 거래가 서브프라임 위기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라고 해석했지만 현실은 달랐지요. 메릴린치 주식은 그 후에도 계속 떨어졌으니까요. 니커나 여러분 모두 운이 없었던 거지요.
월스트리트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미 규제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IB들은 모기지 증권이 현금처럼 유동성이 높다는 말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지요. 그러나 이미 2월에 모기지 시장은 매매가 힘들 정도로 얼어붙었지요.

JP모건체이스와 와초비아 등 8개 IB는 판매했던 모기지 증권을 되사주고 벌금을 물기로 합의, 규제 당국의 칼날을 피했지요. 규제 당국은 경매방식 채권 판매에 개입된 중개인들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직한 중개인들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사기성(詐欺性) 종목 보고서를 발간하거나 친한 경영자를 기업공개(IPO)에 끌어들여 문제가 됐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소액 투자자의 피난처인 뮤추얼펀드가 몇몇 큰손에게 시간외거래를 허용해 개미들의 푼돈에 손실을 끼치기도 했었고요.

뉴욕주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는 비록 창녀 스캔들로 몰락했지만 뉴욕주 검찰총장으로서 그가 수행했던 IB 바로잡기가 의미 없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요즘 월스트리트를 보면서 고소해하는 이가 많은가 봅니다.

아직도 엇비슷한 불법거래가 여기저기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문을 넣으려면 악취를 막기 위해 코를 막아야 할 정도로.
펀드매니저 아이머스 킵업 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