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스의 스승이 쓴‘열린 사회’의 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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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15면

1946년 10월의 어느 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철학 클럽 모임에 40대의 칼 포퍼가 초청됩니다.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50대 후반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그 모임에 참석합니다. 두 사람은 ‘철학적 문제는 존재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흥분한 비트겐슈타인은 난로 부지깽이를 휘두르다 버트런드 러셀의 제지를 받자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자리를 뜹니다.

이 일화가 말해주듯 포퍼는 논쟁에 강한 승부사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말고도 위르겐 하버마스, 허버트 마르쿠제, 토머스 쿤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일합을 겨루며 석학 자리를 굳힙니다.

하지만 포퍼는 46년 런던정경대(LSE) 교수로 임용되고 비트겐슈타인과 조우하기까지 긴 무명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곧 자유주의로 돌아서지요.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이고, 그 후에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는 것은 더 바보”라는 명언을 남긴 채.

이후 나치스의 유대인 핍박 속에 망명길에 올라 1937년부터 45년까지 뉴질랜드에서 지냅니다. 망명 기간 포퍼가 저술한 책이 바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입니다.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습니다. 그의 사회철학이 각광을 받자 그 뿌리인 과학철학도 재조명을 받게 됩니다.

세계 금융계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78)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이 그의 제자인데요. 소로스는 포퍼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어 ‘금융시장은 항상 변하는 비균형 상태에 있다’는 ‘재귀(再歸) 이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