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고객만족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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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치과장비들은 모양새가 무지막스럽다.뭉툭한 집게며 크고 작고 구부러진 각종 바늘,쇠붙이를 갈 때나 쓰임직한 기구.「저 놈들이 내 입안을 휘젓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겁에 질린다.어린이들은 문앞서부터 울음보를 터뜨 리기 일쑤다.
서울의 한 치과에선 환자들의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이같은 장비를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았다.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주제가를 들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용 의자에 앉은 어린이는천장에 그려진 「미키 마우스」그림에 한눈을 판다 .의사아저씨가얼렁뚱땅하더니 어느새 썩은 이를 뽑아들곤 『울지도 않는 걸 보니 장군감이네』하고 칭찬한다.
의정부와 동두천 사이의 조그만 덕정역은 전국 철도역중 유일하게 냉.난방시설을 갖췄고 옮겨타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을지나가지도 않는 새마을.무궁화호 승차권까지 구비,판매하고 있다.대합실 한쪽 구석엔 은행출장소까지 유치했다.모 두 고객만족정신을 구현한 경영혁신의 사례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세계는 지금 고객만족도 모자라 고객감동을연출하기 위한 치열한 머리싸움이 한창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편안하고 기분좋아하며 흐뭇한 기억을 오래간직할 수 있을까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94년 일본에선 다이이치간교은행이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돈 빼내는데 걸리는 시간을1년전 20초에서 14초로,다시 10초벽을 깬 9초로 단축했다해 떠들썩했었다.고객의 시간을 단 1초라도 아껴주겠다는 노력은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보다 신속.친절한 애프터서비스 경쟁을 벌이고 있다든지,고객의 구미(口味)를 알아내는데 적잖은 투자를 하는 등 고객만족에 애를 쓰고 있다.
고객의 불편을 외면한채 자기 편한대로 장사하다가는 고객이 고개를 돌리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는게 경쟁시대의 냉엄한 현실이다. 기업 뿐만이 아니다.앞의 두 사례는 고객만족 정신이 보수적인 병원과 행정에까지 도입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같은 발상의 전환에 힘입어 치과병원은 크게 번창하고 있고 덕정역은 매출목표 초과달성 전국1위 역을 기록했다.
고객만족을 가장 소리내 외치는 분야라면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입만 열면 국가발전에 앞장서고 국민입장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자신만이 국민을 잘 살 수 있게 하는 정치,1등 국민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외친다.
정치인들이 선거때 쏟아놓은 말대로 행동한다면 아마도 고객만족차원을 넘어 고객감동의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라는데 문제점이 있고,그 정치를 상대로 해야 하는 고객들의 답답함이 있다.
총선결과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꿔놓은 것은 고객들이 잡곡밥을 주문했는데도 자기 멋대로 쌀밥을 내놓는 것과 다를바 없다.
고객은 뒷전이다.야당의 장외집회도 고객입맛과는 너무 동떨어졌다.컴퓨터시대의 감각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방식인데 다 등장인물.줄거리 역시 매양 그 밥에 그 나물이니 관객이 식상할 수밖에없다. 최근 등장하는 내각제개헌논의나 지역적 정권교체론 역시 고객을 고려한 게 아니다.자신들의 정치적 속셈이 감춰져 있으니고객만족은커녕 고객피곤 정치인 셈이다.
최근 방한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 교수는 강연에서 『시장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으며 정치가들이 경쟁력을갖추지 못한 국가는 번영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치가들이 경쟁력을 갖추는 첫걸음은 고객만족정치에서 찾을 수있으리라고 본다.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국민이 좋아할 행동인지 아닌지,고객입장이 돼서 생각해본다면 여야가 늘 다투는 정치현안도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개원협상도 마찬가지다.
(정치부장대우)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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