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어글리 코리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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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외국에서는 한국을 이해하기 힘든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있는 것같다.
한때는 2002년 월드컵 축구시합을 유치하지 못하면 국가의 운명이라도 어떻게 되는 것처럼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뜨겁게달아오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한반도 북녘에 사는 동족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도 식량원조는커녕 다른 나라들이 북한사람들을 도와주는 것까지도 하지 못하도록 말리고 있으니,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문인 것같다.
월드컵 문제는 이제 결정이 났지만 북한 문제는 지금부터 정말어려운 고비에 접어든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우선 한국이 북한에 식량원조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인상은정확하지 않다.
사실 북한이 외부세계에 식량원조를 요청했을 때 제일 먼저 쌀을 제공한 나라는 한국이다.
문제는 북한당국이 한국측의 쌀 제공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한국국민의 여론이 나빠진데 있다.정부는 국민을 설득하는대신 여론을 반영하는 정책을 택했다.자연히 대북(對北) 식량원조는 중단됐고,국제사회는 한국정부가 북한의 식량 위기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됐다.
최근에 한국정부는 북한이 4자회담 제의를 수락하는 것을 식량원조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물론 북한이 4자회담제의를 받아들이면 대북 식량원조는 지금보다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현실이다.그러나 필자는 한국정부의 정책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우리정부가 식량을 협상무기로 사용할 정도로 인간성을 결여한 정부라 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북한이 일본이나 미국에는 식량원조를 요청하면서도한국에 대해서는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그리고 분노를 느낀다.괘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자연히 북한 식량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자세에는 북한의 태도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스며들게 됐고 국제사회는 한국의 성숙도와 휴매니티(humanity)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사태는 너무도 불공정하다.북한 인민을 기아의 선상에까지 끌고 간 것은 북한 통치자들이다.
그리고 한국의 도움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북한 통치자들이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북한통치자들의 책임은 묻지도 않고 마치 북한의 식량위 기가 남한당국의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측에도 책임은 있다.우선 우리의 입장을 설득력있게설명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좀 더 성실하게 그리고 북한동포의 고통을 같이 나누는 자세로우리의 대북노력을 설명했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식량문제를 포함한 북한관련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방관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식량문제에 대해서도 각종 국제적 움직임에 적극 참여해 공동노력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그리고 핵무기.미사일등 대량학살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이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하니까 마지 못해 묵인하는 태도를 탈피해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며,우리들의 필요에 따라미국 또는 다른 어떤 국가의 역할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우방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문제의식 자체가 희박해졌고,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적 사고와 정치적의지가 약화됐다.냉전이 종식되고 북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돼가는 지금과 같은 중대한 전환점에서 한국은 자주 적으로 정책을구상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대북정책의 목표부터 정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북한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만일 무조건조기통일을 원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그런 목표에 맞추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조기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이 한 국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의 붕괴를 방지하고 점진적 변화를 유인하기 위한 전략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감정이나 이념이 개입돼서는 안되며,성숙한 리얼리즘을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그러면 북한식량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 응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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