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화제>前CIA국장 로버트 게이츠 회고록 "그늘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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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중앙정보국(CIA)은 냉전체제 아래서는 세계정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핵심기구.말단 정보분석관으로 발을 들여놓은 뒤 91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장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무려30년동안 CIA를 지켰던 로버트 게이츠가 최근 회고록 『그늘에서』(From The Shadow)를 펴내 정치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섯 대통령의 냉전 승리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리처드 닉슨에서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 5명의 대소련정책 결정과정과 공산권 몰락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책은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자기미화도 없지 않지만 여러면에서 세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힐 만하다.미.소 대결체제에서 정책결정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성격과 미국 각 부처간권력암투도 상세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밝혀진 CIA의 공작활동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에피소드 도 아주 재미있다.
게이츠는 다섯 대통령중 소련권 붕괴에 관한한 카터와 레이건의공적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이 기간에 소련이 경제적.군사적.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설명이다.
게이츠는 이 두 대통령 중에서도 카터를 최고로 꼽는데 서슴지않는다.카터의 인권정책이 당시에는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소련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로널드 레이건에 대해서는 『레이건이 소련 경제의 붕괴를예상했으나 당시에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레이건의 예상 또한 직감에 의존했다』고 회고한다.그러나 결국 레이건의 예상이 현실로 드러남으로써 세계경제에 「조예」가 깊지 못하면서도 레이건의 예감은 예민했음이 확인 된 셈이다.
게이츠가 꼽는 CIA의 최대 실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를 과소평가한 반면 소련 경제를 과대평가한 사실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에피소드 한 토막.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어느날 소련이 핵선제공격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접한다.그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기 직전 그 정보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누군가가 실수로 군사훈련용 테이프를 미사일 방어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했던 것이다.
80년 게이츠가 당시 CIA국장이던 스탠필드 터너와 함께 대소련 정보수집을 위한 미.중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비밀리에중국으로 갔던 배경도 상세하게 설명된다.폴란드 자유노조 운동과아프가니스탄 무자히딘의 반소련 저항운동에 대한 CIA의 입장과지원활동도 언급된다.
게이츠는 65년 가을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문학을 연구하던중 CIA와 인연을 맺었다.
한편 이 책과 성질이 다르지만 60년대 미국정계의 라이벌이었던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우정과 경쟁을 적은 『케네디와 닉슨』(Kennedy & Nixon)도 정치가들에게는 관심을 끌 만하다.
케네디와 닉슨의 숙명적 대결이 시작된 것은 46년 동시에 초선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하면서부터.그 이듬해 당시 29,34세로 패기만만한 정치스타였던 케네디와 닉슨이 초청받은 한 정치토론회장.여기서 닉슨은 케네디의 정치관 하나하나 를 물고늘어졌으나 케네디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듯 청중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훌륭한 용모와 매너로 참석자들을 사로잡았다.
닉슨은 그후에도 케네디와의 경쟁에서 몇차례 뒤졌고 그 이유를언론의 편파적 시각에 돌리기도 했다.이런 경쟁관계 외에도 닉슨이 50년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케네디가 닉슨에게 자기 아버지의 정치헌금 1천달러를 전달했다는 이야기 등 두사람의 우정을말해주는 일화도 많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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