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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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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갔어요. 갔어. 완전 독도를 넘기는 홈런, 독도를 넘기고 대마도까지 가는 타구입니다.”

“일본은 완벽히 뭉개야 합니다.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두 번 지고 4강전에서 이겼을 때, 일본의 오만한 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어제 호시노 감독의 한마디로 건방진 말과 일본 언론, 완전히 가라앉혀야 합니다. 안하무인 버르장머리를….”

“일본을 침몰시켰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한·일전을 중계한 방송에서 나온 해설이다. 거침이 없다. 물론 통쾌했을 것이다. 방송을 듣고 후련하게 생각했다는 사람도 많다. 객관적 실력으로 따지면 아직 한국보다 한 수 위인 일본에 승리했으니 누군들 기쁘지 않았으랴.

그러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어찌 생각하면 낯이 붉어진다. 참으로 원색적이다. 아무리 독도 문제로 마음이 상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민족주의적 감정을 적나라하게 쏘아붙여야 했을까. 너무 쉽게 속내를 다 드러낸 것은 아닐까.

스포츠는 경쟁이고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또 어디까지나 스포츠일 뿐이다. 한국이 야구 경기에서 일본에 패한다고 독도의 실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일본과의 예선 풀리그 경기에서도 한국이 역전에 성공하자 비슷한 톤의 ‘독도 운운’이 나왔다. 그러다 9회 말 수비에서 재역전의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잘 막아내 한국의 승리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반대의 결과가 됐더라면 어찌 됐을까.

세계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가 올림픽이다. 이번 참가국은 204개국으로 역대 최다였다. 유엔에 가입한 192개국보다 12개나 많다. 그런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싸워 승리하고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설 때마다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서 가슴 뿌듯했다. 말보다는 실력으로 분투한 선수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들이 맹활약하는 모습을 말로 전하는 일부 중계방송엔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국가 대항전인 올림픽은 세계화와 더불어 내셔널리즘적 요소를 담고 있다. 모두 다 자국 선수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한국도 이번 올림픽에선 ‘중화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중국 응원단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들었다. 일부 종목에선 중국인들이 한국이 상대하는 국가 선수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방적으로 응원했다고 한다. 유독 한국만을 싫어한다는 인상도 줬다. 일부 네티즌은 성화가 꺼진 지금도 여전히 조직적으로 반한(反韓) 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은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감수하고 있지만 자원이 없는 우리로선 세계와 교역하고 소통하는 데 앞장설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옹졸하고 편협한 국수주의나 내셔널리즘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일 것이다.

혹자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독도 문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방어적 수단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대외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결코 약자가 아니다. 이제는 성숙해져야 한다. ‘우리끼리’에서 벗어나 세계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역사를 통해 엄청난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민족주의적 대결로 돌아가는 일을 세계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루지야 사태를 염두에 둔 경고지만 우리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한두 경기 이겼다고 일본을 넘어섰다고 생각지 않는다.”

승장 김경문 감독의 말이다. 아량 있는 진정한 승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한경환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