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그린벨트 계속 규제냐 개발 완화냐-지속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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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몸살을 앓고 있다.최근 정치권은 그린벨트 개발제한 완화를 위한 입법을 서두를 움직임이며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동으로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정부는 『요구대로 손을 댔다간 그린벨트 자체가 남아나지 않는다』며 종 전 입장을 지키고 있다.쾌적한 도시환경을 위해 감수해야 할 규제인가,국민의 소중한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인가.71년 제도 시행이후 계속돼온 그린벨트 지속.완화 논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편집자註] 푸르름은 좋은 것이다.진부한 이야기지만 푸르름은 우리에게 녹음을 제공하고 산소를 제공한다.또한 여가를 즐길수 있도록 하고 마음의 여유로움도 준다.그러기에 우리는 가능한한 푸르름을 곁에 두기를 원한다.정원이 딸린 주택을 선망하고 여의치 못할 때는 실내에 화분이라도 들여놓는다.
공원이 있는 동네는 집값도 비싸다.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사는사람일수록 푸르름을 향한 열망이 크다.이것은 끝없이 전개되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삭막한 도시환경에 대한 반작용이다.건강한삶을 바라는 도시민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다.
개발제한구역,이른바 그린벨트는 바로 이같은 열망과 소망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그냥 놔두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숲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도시주변지역의 푸르름을지키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그린벨트는 19세기 중반,도시민의 평균수명이 26~27세를 기록했던 영국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세계 최초로 도입한정책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많은 나라에서 영국의 시범을 따르고 있다.심지어 뉴질랜드.캐나다 처럼 땅은 넓고 인구는 적어 온통 푸르름으로 뒤덮인 나라조차 그린벨트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71년 그린벨트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속되고 있으니 25년의 연륜이 쌓인 셈이다.이 정도면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정책이 일상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일관성 있게 추진된 거의 유일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린벨트 정책이 최근 도마위에 올랐다.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부산하다.심지어 그린벨트를 폐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있다.이같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선거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했었고 또 그때마다 정치 적 압력에 밀려 조금씩 규제를 풀어왔던 것이 그간의 그린벨트 정책이었다.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는 것은 옳은 일이다.그린벨트제도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이를테면 현행 그린벨트의 잘못된경계설정이나 주민의 과도한 희생은 고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 선거철의 단골메뉴가 되고 그 때마다 미봉책으로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잦은 정책 변경은 그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책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질 수 없다.
둘째,잦은 정책변경은 그린벨트 주민에게 끊임없는 헛된 기대를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이래선 민원과 규제완화의 반복되는 연쇄고리를 끊을 수 없다.
셋째,그린벨트는 소중히 지켜야 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환경의 소중함이 가치를 더해가는 요즈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린벨트 정책개선이 과연 불가피하다면 정치권의 압력과 무관하게 철저한 합리성에 입각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그린벨트의 점진적인 잠식과 훼손을 막고 영구보전하는 적극적인 길이라고 본다.
가뜩이나 삭막한 우리의 도시에서 그나마 푸르름을 선사했던 그린벨트가 온통 잿빛 시가지로 바뀐 경우를 상상해 보라.
최병선 경원대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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