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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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입원을 하셨다구요?』 스티븐슨교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병이 새로 생겼다면 몰라도 그런 증세로 입원할 필요는 없는데 누군가가 그 분을 가두려 한 것은 아닐까요? …문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는 몹시 걱정스러워 했다.
『가두기까지야….』 이자벨이 남편의 말을 부정했지만 역시 어두운 얼굴이다.
콕 로빈은 아까부터 계속 아리영을 쳐다보고 있었다.안쓰러워하는 눈빛이었으나 그의 허탈한 앉음새에서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같았다.
콕 로빈은 헛갈리며 낙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리영에게 연인이 있어 일행이 묵기로 한 호텔에 미리 불러다놓고 선화공주님처럼 「밤에 몰래」 얼렸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아닌지.그러다 습격해온 연인의 아내에 의해 「머리카락 증거」가 잡혀 혼쭐이 난 것쯤으로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차라리 이 남자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고백하리라 마음먹었다.그고백으로 인하여 콕 로빈은 더욱 번민할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그나마 이 남자의 정성어린 짝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닐는지.
그러고나면 오히려 우변호사를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엔 아직까지 간통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죠?』 우변호사의 아내가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간통죄는 쌍벌죄(雙罰罪)요,친고죄(親告罪)다.배우자의 일방이 다른 배우자를 간통죄로 고소하자면 자신의 의사에 의해 스스로 소(訴)를 제기해야하고 이혼을 전제로 해야 한다.이혼소송을 낸 다음 에야 간통죄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우변호사의 아내가 간통죄로 자기 남편과 아리영을 고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편과의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이혼소송을 내야 하는것이다.더군다나 간통죄는 죄를 저지른 남녀 쌍방을 두루 벌주는쌍벌죄이므로 우변호사도 벌을 면탈할 수는 없다 .
우변호사의 아내가 북극성처럼 눈부신 명망가(名望家)인 남편과이혼하고 그에게 쌍벌의 오욕을 씌워서까지 간통소송을 제기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하겠다」는 우변호사의 뜻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녀는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런 변을 당해서까지,아니 그런 변을 당하게 해서까지 우변호사를 가져야 할 것인가.가슴이 옥조여오며 서을희여사의 얼굴이 그려졌다.서여사가 보고 싶었다.자신의 일이며 정여사 일을 그녀와 의논하고 싶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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