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76>오! 인생의 즐거움은 이런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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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32면

해마다 여름이면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다. 왜 일본인은 무더운 여름날에도 오봉(일본의 명절·8월 15일) 연휴 며칠 외에는 쉬지 않고 일하는 걸까? 아마 한국인도 비슷하겠지만 3시간에 걸쳐 저녁을 먹고 여름에는 한 달씩 바캉스를 즐기는 프랑스인이 들으면 정말 까무러칠 만한 근면성이다.

내 경우 여름 휴가는 일주일이다. 프랑스인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그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피로를 풀고 휴식을 만끽하고자 노력하는데, 그때 반드시 마시는 와인이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록스 리프’다. 개구리 모양의 레이블이 심벌 마크인 이 와이너리는 미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산자다.

프록스 리프의 ‘메를로 나파’를 처음 마신 것은 5~6년 전으로, 당시 가격은 3000엔대였는데 가격에 비해 맛이 깊고 부드러우면서 은은하게 풀과 흙 냄새가 났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숲의 숨결 같은 상쾌한 와인이었다. 가격 대비 훌륭한 맛과 향에 감격해 자세히 알아보니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자연농법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와이너리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력은 농장에 설치한 태양전지로 충당한다. 즉, ‘로하스’를 토지에 실천하는 생산자다.

오너인 존 윌리엄은 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했는데 학비를 벌려고 와이너리에서 일하다 와인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와인 양조학을 배운 뒤 유명 와이너리인 스태그스 리프에서 경험을 쌓았다. 1981년에는 아끼는 BMW 오토바이 2대를 판 돈으로 개구리 양식장이었던 땅을 사들여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프록스 리프’는 전에 일했던 와이너리 스태그스 리프와 개구리 양식장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레이블에 그려진 개구리 마크는 처음 보면 약간 이상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개구리가 뛰는 모야의 39프룩스 리브39 심벌

“와인 만들기는 건강한 토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윌리엄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포도밭 흙을 점차 유기 토양으로 바꿔 나갔고, 화학비료 대신 양조 과정에서 나오는 포도껍질을 밭에 뿌렸다. 현재 그의 포도밭에는 병충해를 없애 주는 미생물의 숫자가 다른 밭보다 열 배나 많이 서식한다.

프록스 리프의 와인은 항상 품귀 현상을 빚는다. 그도 그럴 것이 윌리엄은 지난 10여 년간 와인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증산에 증산을 거듭해 갑부가 된 와이너리가 많지만 윌리엄은 언제나 “돈벌이에는 관심 없다”고 말한다. 와인 병 바닥에 적혀 있는 ‘즐거운 때는 시간을 잊게 한다’는 말대로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즐기는 것’이다. 흙을 만지고, 와인을 만들면서 월리엄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돈은 많이 벌더라도 업무에 쫓기는 여유 없는 생활은 그에게 전혀 ‘즐겁지 않은 인생’인 것이다.

그런 윌리엄의 인생을 그대로 찍어낸 듯 여유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개구리 와인 한 잔을 독자들에게 휴식 같은 청량제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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