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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축제를 즐길 권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호 07면

일러스트 강일구

배드민턴의 이용대가 금메달을 딴 뒤 카메라를 향해 날린 윙크를 보면서 깜짝 놀라 버렸다. 어이쿠! 진짜 신세대구나. 영상과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UCC 세대만이 할 수 있는 그 몸짓의 발랄함이라니. 그는 ‘TV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라 ‘TV를 이용해 먼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낸 스포츠 선수 1호’로 의미 붙여져 마땅하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이용대는 카메라 앞에서 멋쩍어하는 스포츠 스타의 전형을 옛날의 전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 잘했지? 나 잘났지?’ 그렇게 당당한 메시지를 담아 그가 스스로 ‘스타 선언’의 신호를 보내자 환호한 팬들은 그의 움짤(짧은 동영상)을 퍼 나르고 미니 홈피를 다운시키며 유쾌한 소통을 주고받는다. 올림픽과 스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새로운 방식이다.

세상이 바뀌고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도 진화해 가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박태환은 400m 금메달 못지않게 200m 은메달을 통해 ‘은메달도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수많은 쟁쟁한 선수 사이에서, 까딱 0.01초 차이로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그 살벌한 경쟁 속에서 ‘세계 2위’를 따내기가 얼마나 힘들며 자랑스러운 일인지.

결승전에서 지고도 웃음을 잃지 않은 양궁 박성현과 박경모, 역도 윤진희, 펜싱 남현희, 체조 유원철 모두 그 자랑스러운 ‘세계 2위’였다.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함께 따내고 함께 울어 버린 탁구선수 당예서는 올림픽을 버티는 가장 큰 기둥인 국가주의·애국주의 등이 사실은 별로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줬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단단한 국가의 벽을 넘었고, 편견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역시 그저 우리 편이 잘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박수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완벽한 근육 속에 담긴 노력의 흔적을 통해 새로운 여성미의 충격을 던져준 역도 장미란은 아예 금메달을 향한 애탄 열망마저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우침을 줬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최고의 기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자신과의 싸움은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몸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고대 올림픽의 참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황홀했던 올림픽의 시간이 저물어간다.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바뀌지 않거나 퇴보하는 것도 많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최고 스타인 이신바예바의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 수립 장면을 TV에서 생방송으로 해주지 않는 만행 같은 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축구 팬들이 최고 경기로 기다렸을 메시와 호나우지뉴의 맞대결은 물론 여자농구의 8강 경기를 비롯해 미국 드림팀의 농구경기나 배구경기 등은 TV만 보면 아예 있지도 않은 경기들이 됐다.

세 방송에서 같은 경기만 지겹도록 틀어대거나, 아니면 똑같이 드라마를 틀어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케이블도 있고 지상파 채널만 네 개지만 글로벌 축제로서의 올림픽을 즐길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엄청난 TV중계의 퇴행이다.

최악의 퇴행은 정부가 기획했다는 거리 퍼레이드다. 그것 때문에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선수들마저 원치 않은 베이징 연금 상태가 됐단다. 때가 어느 때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이런 1970년대 사고방식에 갇혀 구태의연한 짓을 하고 있는지 정말 달력이라도 선물하고 싶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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