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소국’ 싱가포르 <下> 인공지능 메신저로 한 학급 40명 ‘1 대 1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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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싱가포르의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교육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보다 1년 늦은 1997년 교육정보화 사업을 시작했지만, 조만간 한국을 추월할 기세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전문가는 “전체 인프라는 한국이 좀 낫거나 엇비슷하지만 시범학교에 대한 투자 규모는 싱가포르가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싱가포르의 교육철학이 ICT 사업에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수업 활용도 역시 한국보다 높다. 한국이 10%대인 반면 싱가포르는 30%대다.

니안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 유학생 김모군은 “교과서만 볼 때보다 ICT 수업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을 배워도 집중이 잘되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교육 강소국’ 싱가포르의 미래 성장동력, ICT 교육 현장을 살펴봤다.

“여러분, 다들 뉴턴과 만났죠? 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세요.”

6일 오전 싱가포르 니안중학교 3학년 과학시간. 17~18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의 운동 3법칙을 주제로 수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시작하라”는 말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필기도, 설명도 없었다. 달랑 질문지 한 장 돌린 것이 전부였다. 학생들은 각자 컴퓨터를 이용해 ‘자습’을 시작했다.

한 학생의 화면을 들여다보니 MSN 메신저 창을 통해 누군가와 쉴 새 없이 채팅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에 이렇게 딴 짓을 해도 되나 싶어 선생님을 돌아보니 “다들 지금 1:1 과학 수업을 받는 중”이라며 웃는다.

‘뉴턴’은 니안중학교가 MSN 메신저 개발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싱가포르 법인과 공동 개발해 올해부터 활용하고 있는 ‘인공지능 물리교사’다. 이 학교 교사들이 질문 내용과 답을 만들어 MS가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DB)에 축적시키고 있다. “힘이란 무엇인가” “운동 제1법칙을 설명해 달라”…. 학생들이 메신저로 질문하면 ‘뉴턴’은 곧바로 답을 해줬다. 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 연구하며 질문지의 답을 메워갔다. 40명이 함께 수업을 받지만 질문과 답변은 다 제각각이었다. 사실상 40명이 각자 1:1 수업을 받는 셈이었다. 교과서적인 문답만 오가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채팅을 하듯 사적인 대화도 오갔다. ‘뉴턴’은 “남자냐 여자냐” “결혼은 했느냐”와 같은 짓궂은 질문도 곧잘 받아넘겼다.

이 학교 아드리안 림 교장은 “학생들이 궁금한 게 있어도 손 들고 물어보는 게 힘들어 망설이던 일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친숙한 수단을 수업에 끌어들인 아이디어가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뉴턴’은 1년여 전 학교 측이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MS 측은 “메신저를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새로운 아이디어”라며 적극 호응했다. 교사들은 문답용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했고, 회사는 프로그래밍과 서버를 지원했다. 림 교장은 “현재는 우리 학교만 이런 교육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학교에서도 주목하고 있어 곧 확산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세컨드 라이프(세계적으로 유명한 3D 가상 현실 사이트)를 이용해 미술 수업을 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림 교장은 “학생들이 세계적인 명화 속으로 들어가 화가를 만나고 설명을 듣는 형식이 될 것”이라며 “해당 업체와 협의를 시작했으며 연말께면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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