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위석칼럼>부처님,우리 부처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고타마 부처님,시절의 운행은 어김이 없어 내일은 또 다시 초파일입니다.서울 거리에 줄줄이 전깃불 연등(燃燈)이 걸렸습니다.이건 낭비도,사치도,소란도 아닙니다.해마다 반복되는 이 축제엔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없진 않지만,부처님 맞이만한 경사가 아승기겁(阿僧祇劫)이 지난들 달리 또 있겠습니까.그래서 부처님도 생전에 꽃과 등불과 음식으로 여러 왕과 부자 상인들이부처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지요.
그렇지만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을 부처님은 특히 칭찬했습니다.부처님께는 남달리 빼뚜름한 데가 있었던가 보죠.차라리 이빈자의 일등을 위하여 푸짐한 다른 공양도 받아들이셨던 것은 혹아니었습니까.이스라엘 사람 성자인 예수님이 잃 어버린 양 한마리를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마리보다 더 애타게 생각한 것과 품셈이 대강 같네요.사람 사는 번뇌의 무거움이 확 달아나는 무중력속의 자유 같은 산법(算法)입니다.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아수라 세상 욕심과는 전혀 별도인, 서방정토(西方淨土)자비의 논리입니다.
며칠 전에는 조계사에서 좀 색 다른 불사가 있어 구경을 갔습니다.봉선사 젊은 스님들 발원으로 밀린다왕(王)문경을 한국말로번역하여 CD롬에 저장한 것을 봉헌하는 자리였습니다.한문 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봉선사 운허(耘虛)스 님이 시작하여그 제자 월운(月雲)스님이 이어오고 있습니다.이 CD롬 불사는불경의 우리말화(化)와 디지털화를 겸한 것이었습니다.부처님,이불사를 빈자의 일등으로 거두셨겠지요.
봉선사의 역경(譯經) 인연은 멀리 조선조 세조 임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까.그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때 자기 아버지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創製)하자 효성 있는 아들로서,정성스런불제자로서 부처님의 가계와 일대기를 한문으로 엮고 그것을 다시우리말로 번역했는데 다름아닌 『석보상절(釋譜詳節)』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미구에는 단종을 죽였습니다.권력은 죄업(罪業)의 사슬을 이다지도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가 봅니 다.정치란 결국 이런 것인가요.세조는 죽은 다음 광릉에 묻혔는데,봉선사는 이 능 옆에 그의원찰(願刹)로 지은 것입니다.
부처님도 왕자로 태어났지요.부처님 탄생 닷새째 날 부처님께 이름을 지어 올리려고 모인 브라만들 가운데 아시타 선인(仙人)은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고 이 아이는 장차 궁정에 머물러정치를 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이 될 것이고출가하여 수행하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요샛말로 하면 대권(大權)을 이어받아 조상의 왕국을 번영시키기를 너무도 간절히 원했습니다.그렇게 했더라면 그 전륜성왕의 운명은 모르긴 하지만 그 한참 뒤의 조선국임금 세조의 그것과 비슷했겠지요.
싯다르타 왕자로 불리던 부처님이 아름다운 말 칸타카의 등에 앉아 성실한 마부 차나에게 견마를 잡히고 밤중에 궁중을 빠져나와 아노마강을 훌쩍 건너간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차나와 칸타카에게 영광 있기를!).그리고는 그 마부와 말은 부왕에게 돌려보냈습니다.그로써 아버지에게 출가 소식도 전했지만,세속적 정치권력의 재산을 반환하는 뜻도 있었겠지요.정치란 것은 인민에게는옛날부터 썩 잘 해야 본전이고 정치가에게는 아직도 구체적으로는권력 차지하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서울 시청앞 광장에 세운 부처님 오신날 축하 연꽃은 꼭 요새 우리나라 정치 같아 마음이 언짢습니다.첫째,만든 품이썩 아름답지 못한 것은 마음에 평화.자비.지혜가 그만큼 모자랐던 탓이겠지요.부처님을 상징하는 연꽃은 누구의 눈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 겨울에 그 자리는 「크리마스 트리」가 서는 곳이니까 초여름엔 「불탄(佛誕)연꽃」도 어쨌든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이것은 「불기등권론(佛基等權論)」이라고나 할 분별심의 작용 아닐까요.차라리 성철 큰 스님 법어대로 부처와 예수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부처님의일체지(一切智)세상일 것입니다.
부처님,우리 부처님,한국 사람은 지금 경제적 풍요만으로도,자유로운 투표권 행사만으로도 살지 못하겠습니다.경제도 정치도 아닌 사람 사는 참다운 부처님의 길을 한참만에 한번씩은 보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