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 나노 “숨은 암 꼼짝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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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KIST 김광명 박사가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나노 입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는 쥐의 암세포에만 나노 입자가 축적된 것(밝은 부분)을 볼 수 있다. [KIST 제공]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는 없을까? 약물 투입과 동시에 치료 경과를 손금 보듯 할 수는 없을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권익찬·김광명 박사팀이 그 해답을 찾아냈다. 나노 기술을 이용해 생체 내 약물의 이동과 치료 과정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테라그노시스(진단·치료) 기반 기술을 약 5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이 분야에 가장 앞섰다는 미국의 스탠퍼드대학과 하버드대학의 연구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각종 난치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시대가 10년 뒤에는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는 진단 따로, 치료 따로 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 아스트라 제네카, GE헬스케어 등이 KIST의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암세포에만 주로 축적되는 광학 영상용 나노입자=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려면 나노 입자가 환부에만 주로 축적돼 약효를 내야 한다. 엉뚱하게 정상 세포에 축적되면 질병을 치료하려다 되려 부작용에 더 시달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연구팀은 두 가지 나노 입자를 설계했다. 암 조직에만 주로 축적돼 형광과 약물을 방출하는 것 한 가지와 암 조직에 달라붙되 암 조직에서 나오는 특정 효소를 만났을 때만 형광·약효를 나타내도록 하는 것 두 종류다. 전자가 수동형이라면 후자는 지능형 또는 스마트형 나노 입자다. 물론 두 종류 모두 형광을 내기 때문에 생체 밖 영상 장비로 나노 입자의 움직임과 치료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나노 입자의 크기는 100~200㎚. 이런 크기면 정상 조직의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혈관 내피세포가 워낙 촘촘하게 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 조직이 있는 부위의 혈관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나노 입자를 주사하면 암세포에만 흡수되는 이유다.

김 박사는 “주사한 나노 입자의 3~5% 정도가 암 조직에 축적이 되고 나머지는 3일 정도면 소변을 통해 모두 체외로 빠져나간다”며 “몇 번에 걸쳐 나노 입자를 주사하면 고농도의 항암제를 암세포에만 집중적으로 퍼붓는 효과를 가져와 그만큼 치료도 잘 된다”고 설명했다.

지능형 나노 입자의 경우 죽는 세포가 있을 때만 형광과 약물을 방출하게 설계했다. 이를 이용하면 암세포가 어느 정도 죽는지 손금 보듯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나노 입자의 ‘변장’=나노 입자는 형광을 내게 하는 데 그 한 귀퉁이에 원하는 약물을 함께 붙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성질은 여러 종류의 항암제 중 어떤 약물이 환자에게 가장 잘 약효를 나타내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기존에는 이런 과정이 한 두 달 걸렸지만 형광 나노 입자를 이용하면 하루 이틀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약물의 체내 움직임과 약효까지 동시에 영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학 영상용 나노 조영제의 단점은 1㎝보다 더 깊은 피부 속은 들여다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노 입자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나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로 인체 내 깊숙이 있는 장기에 투여된 나노 입자를 관찰하게 한다.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용으로 사용할 때는 나노 입자에 빛을 내는 가돌리늄을 붙인다. 그래도 나노 입자의 기본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1~5㎜ 크기 암도 찾아 내=쥐 실험 결과 나노 입자를 사용하면 5㎜ 크기의 암도 쉽게 찾아냈다. 기존 장비로는 쉽지 않는 일이다. 암세포에 쌓인 나노 입자가 내는 형광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노 입자는 추적자 역할도 훌륭하게 해 낸다.

권 박사는 “쥐 실험에서 폐암이 앞 다리로 전이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퇴행성 관절염의 경우도 발병 때 나타나는 특이 효소를 찾아내 조기 진단하는 데 나노 조영제는 한몫 단단히 한다”고 강조했다. 나노 입자가 암뿐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진단·치료에 동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치료(Therg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다. 2000년대 들어 기술이 급속하게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나노 의학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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