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서 불법이라 밝혔는데도 노 전 대통령 측 국가 기록물 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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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 기록물 반출에 대해 당시 행정자치부가 불법성을 지적하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국가 기록물 유출 수사팀(팀장 구본진 부장검사)은 20일 최양식 전 행정자치부 1차관(현 경주대 총장)을 불러 조사했다. 최 전 차관은 2006년 8월부터 올 2월까지 행자부 1차관을 지냈다. 최 전 차관은 검찰에서 “지난해 청와대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국가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차관은 “행자부 실무진이 법률 검토를 한 결과 전임 대통령이 국가 기록물을 사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불법으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최 전 차관은 “합법적으로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이 같은 결론을 청와대 측에 알려줬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최 전 차관의 진술은 노 전 대통령 측에서 국가 기록물 반출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강행했다는 것을 뜻한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행위라는 인식과 의도성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최 전 차관의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록물 반출에 관여한 전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 조사 결과 청와대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여러 차례 행자부에 e지원 시스템(옛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 시스템)의 복제를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국가 기록물을 보관, 열람하는 용도였다. 소요 예산은 약 12억원이었다. 청와대 측은 행자부의 ‘전자정부사업’ 예산을 활용하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행자부가 말을 듣지 않자 청와대 측은 국가기록원을 통해 행자부에 예산 지원을 다시 요청했다. 행자부는 실무진의 반대로 끝내 이를 거부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 측은 수억원의 사비를 들여 당초 계획보다 단순한 e지원 문서열람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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