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투웨인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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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니,어른이 뭐 그런 책을 보고 있어.』 『정글 북』이나 『소공녀』를 펴들고 있으면 마치 어느날 갑자기 퇴행하는 여자를보듯 주위에서 묻는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지금껏 어느 난해한 책에서도 찾지 못했던 진솔한 철학과 삶의 용기를 얻는다.
가장 단순함 속에 묻힌 보물이랄까.그래서 어린이 책과 어른 책이 따로 있다는 것에 의문을 느끼곤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흔히 아동을 위한 도서로 알려져 있다.10대 소년의 모험담이어서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아동도서로 분류했다가 황망히 어른 것으로 옮겨 놓았다.
책의 행간에 숨은 의미가 미국의 이상주의와 인간의 우매함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기 때문이다.
허크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에 기존의 사회제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자연아다.
학교에서는 남의 밭에서 절대로 참외를 따먹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는 훔치는 게 아니라 빌리는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그것을 먹는다.
아무리 제도와 교육이 이상적이라도 본능과 현실에 맞지 않을 때는 더 큰 혼란을 부른다.그래서 책에 쓰인 것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현실로 옮기는 톰은 우스꽝스럽다.
트웨인은 유머 속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냉소 속에 따스함을 담는다.허크는 도망친 노예를 고발하지 않는다.
법에는 어긋나도 우정을 생각해서나 노예의 착한 성품을 보아서나 고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노예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이 소설은 법과 제도가가능한한 인간의 본성에 맞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간혹 이 책이 줄여져 아동용으로 읽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책의 의미는 행간에 있고 그것을 섭취하는 힘은 읽는 이의 성장과 경험에 비례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좋은 책인가 그렇지 못한 가에 있을 뿐이다. 어린이 책은 어른들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재볼 기회를 스스로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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