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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21세기의 민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 사람들이 파악하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상인가.최근 뉴욕타임스가 6개월동안 미국민의 최대 뉴스 공급원인 텔레비전을 정밀시청했다.모니터 결과를 어느 칼럼니스트가 소개한 내용은 예를들면 이렇다.
텔레비전에 비친 지구상 최고 유명 인사 두 사람은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다.순위대로 20명을 뽑은면면(面面)중 외국인은 단 한명도 없다.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미국 대통령선거다.말하자면 미국밖에서는 중요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식이다.미국땅 밖에도 세상이 있다면 보스니아와 이스라엘 정도라고나 할까.
미국사람들이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바깥 세상을 더 모르고 살고 있을까.모를리 있겠는가.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미국만 신경쓰고 살아도 아무 지장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점 점 늘어나는이민은 유쾌할 수 없다.심지어 미국사회를 유린하는 위협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의회가 이민법개정안을 곧 통과시키게 돼 있는 것도 이같은 사회분위기 때문이다.법안은 불법 이민자에 대한 제재강화뿐 아니라 합법적 이민자에 대해 서도 혜택을 줄이는 내용이다.불법 이민자를 더 쉽게 추방할 수 있게 하고 정치적 망명도 제한하려는 것이다.
이민자들 때문에 전통적인 노동시장 질서가 교란돼 노임이나 봉급이 낮아지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쪽으로 많은 미국사람의생각이 바뀌고 있다.기업도 저임금의 이민 노동력을 이용해 기존인력의 감원등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있다.흔히 미국인은 첨단기술이나 전문기술,아니면 그 반대쪽 농업부문이나 막일을 감당할 인력을 공급하지 못한다는 일반론에 반발하고 있다.임금이 문제라는 주장이다.한마디로 말하자면 중산층붕괴등 미국사회에 드리워지고 있는 불행과 재앙,심지어 흑인사회의 대규모 빈민화등 모든 사회악의 근본은 이민에서 연유한다는 심리가 미국인들의 가슴에 확대되고 있는 인상이다.
이같은 추세에 대한 경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경제학의 시카고학파를 대표했던 노벨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최근 라디오 대담에서 이민자들에게 미국경제 불행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부당하다고 지적했다.한편 최근 지식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부족(部族)들(Tribes)』이란 책도 미국인들의 편리한 책임전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텔레비전 경제문제해설자인 필자 조엘코트킨은 「21세기 신국제경제에서 성공여부를 결판낼」 인종.종교.동질성 문제를 분석하면서 냉전 과 이념이 사라져버린 앞으로의 세계는 한 촌락으로 작아지고 그 촌락은 대개 다섯개 정도의부족이 할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촌락 서쪽에는 유대인과 앵글로-아메리칸,동쪽에는 일본인.중국인.인도인 등이 그것이다.
이들에게 그는 「글로벌」부족이란 호칭을 부여했다.말하자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한 「세계화」에 성공했거나 잠재력을 갖춘 부족이다.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세가지 있다.첫째,동족의식과 상부상조가 강하다.둘째,상호신뢰를 바탕으 로 범세계적연결망이 국경을 초월한다.셋째,기술과 지식에 대한 열망이 두드러진다.저자가 앞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국경을 초월해 경제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파급시킬 잠재력있는 「부족」으로 한국인도 예거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글로벌」부족은 과거에도 있었다.이들에게 폐쇄적이었던 나라는상업과 기술이 쇠락했고 이들을 포용했던 국가는 융성했다는게 필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다.「건강한 이민」,특히 독특한 상업적.전문적 기술을 갖춘 부족들의 유통은 세계적 도시를 형성하고 거기서 경제가 번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21세기는 국가개념이 달라질 것이다.「글로벌」부족의 내왕은 새로운 세계경제의 활력이 될 것이다.미국에서 번지고 있는 반(反)이민정서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우(愚)를 범하는게 아닐까 우려된다.
(미주총국장 )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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