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경제학자로 명성이 높아지자 박정희 정부가 그를 끌어당겼다. 61년 재무부 장관 고문으로 관직에 첫발을 디딘 뒤 농협중앙회 회장, 한국은행 총재, 재무부 장관, 산업은행 총재 등을 차례로 지냈다.
그가 한은 총재이던 시절 행원이었던 김명호 전 한은 총재는 “재무부 장관과 3대 국책은행장을 한꺼번에 지낸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만큼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김 전 총재는 “시국관이 공정한 데다 인품이 아주 훌륭했던 분”이라며 “뒷날 내가 한은 임원이 되면서부터 자문을 많이 청했다”라고 덧붙였다.
공직을 떠난 뒤 그는 사돈인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자의 회사에 몸담았다. 둘째 딸(경렬씨)이 박 창업자의 3남인 박삼구 회장의 부인이다. 그는 생전에 “산업은행 총재로 있을 당시 박인천 회장이 찾아와 사돈을 맺자고 요청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호남 출신인 박 회장이 지방색을 초월하기 위해서라도 영남 출신인 자신과 사돈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의 진실성에 동감해 사돈을 맺게 됐다”라고 말했다.
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의 사장으로 취임한 뒤 92년 명예회장으로 퇴임하기까지 18년간 최고경영자(CEO)로 있으면서 세계적인 합성고무업체로 성장할 기반을 닦았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을 무려 12년 동안 지내며 유화산업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김영욱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