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 明暗 비정규직] 中. 비정규직 채용의 득과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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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늘려 온 기업들의 손익계산서를 따져 보면 명암(明暗)이 교차한다.

우선 기업들은 비용 절감면에서는 큰 효과를 봤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건비 비중은 1997년 12%였으나 지난해 8.9%로 떨어졌다.

한해 벌어들인 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매출액 경상이익률도 1998년 -0.4%에서 지난해엔 7.3%로 한국경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98년엔 기업들이 100원어치 제품을 팔아 손해를 봤지만 지난해엔 7원 이상 이문을 남겼다는 뜻이다. 모두 인건비 절감의 덕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상당한 보탬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정규직의 활용을 통해 과거보다 경기부침에 따른 구조조정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노동시장이 많이 유연해진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가운데 임시.일용 노동자의 비중은 한국이 50%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3%에 비해 훨씬 높다.

그러나 비정규직 확대로 손해보는 부분도 있다. LG경제연구원 이병주 연구원은 "비정규직 근로자는 아무래도 소속감이나 조직 충성도가 떨어지므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콜센터나 유통업체의 매장관리처럼 고객과 직접 만나는 분야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경우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론 친절을 바탕으로 하는 고객만족 경영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비정규직 판매사원인 金모씨는 "비정규직의 경우 인센티브가 없어 옷을 하나도 팔지 못하는 사람과 100벌 파는 사람의 수당이 똑같다. 우리 입장에선 하나도 팔지 않고 그냥 앉아서 노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제조를 전적으로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는 소니.에릭슨과 거의 자체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LG전자를 비교하기도 한다. 전자는 시장 지배력이 약화된 반면 후자는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기능인력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기업들은 정규직 기능인력이 노령화되면 이들의 자리를 이직이 잦은 미숙련 비정규직으로 메우는 게 보통이다. 이 경우 현장의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기능의 단절'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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