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日정부, 인질들에 괘씸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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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정부나 보수 언론에선 요즘 이라크 무장세력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일본인 다섯명의 '자기 책임론''자업자득론'이 쏟아져 나온다. "정부가 10여차례나 이라크에서 대피하거나 들어가지 말라고 권고했는데 말을 듣지 않은 만큼 구출비용이나 최소한 건강진단비.항공료는 당사자 5명에게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방송은 구출협상을 위해 이라크에 파견됐던 공무원 수.항공료 등을 상세히 따져가면서 구출비용을 계산하기도 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에 대해 21일 사설에서 "외국에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부의 책임"이라며 "특히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에 붙잡힌 국민의 구출은 정부의 의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개인이 한 행동에 대해 국가와 개인의 책임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문제의 다섯명이 정부 권고를 무시한 것은 잘못이지만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정부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 정부.여당은 20일 인질 사건을 계기로 특정 국가에 대한 여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헌법 위반인 것으로 판단돼 포기했다. 게다가 다섯명은 자원봉사자.저널리스트로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에 반대한 사람도 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인질이 된 1차 원인의 제공자는 일본 정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인질 가족들이 자위대의 이라크 철수를 요구했고, 인질들이 "다시 이라크에 가겠다"고 말해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된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도 20일 '일본에선 인질로 붙잡힌 국민이 구출된 비용을 낼 의무가 있다'는 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인도주의 활동을 열심히 해 일본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높인 젊은이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데도 이들을 헐뜯는 데만 열중"이라고 꼬집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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