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칼럼>선동열! 부담감 덜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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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숫자는 때론 응변일 수 있다.특히 프로 야구선수에게 숙명적으로 따라다니는 숫자의 마성은 선수의 인격 그 자체처럼 팬들에게각인되고 있는 듯하다.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의 박찬호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의 선동열에 관한 국 민적 관심은 두 선수가 비록 입지와 처신은 다를지언정 그들이 현지에서 던지는 공의 궤적을 숫자화한 결과를 놓고 사람들이 고무되고 때로는실의에 빠지는 것으로 보아 만만찮다.
금강역사와 같은 타자들을 다루는 박의 역투하는 모습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의 편린을 볼 수 있었고 선의 완벽한 마무리 피칭은 그의 관록과 함께 새로운 신화의 창조를 예고해 주었다.순조로운 출발을 두 사람은 보여준 셈이다.그들은 물론 자질면에서 스스로 설 땅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대단히 많은 변수를 안고 있어 그런지 미국.일본 그리고 한반도를 잇는 성취의 합창은 너무 수월하게 찾아온 것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빠르다 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했다. 선의 부상탈락과 박의 컨트롤부진은 스포츠의 파괴적 이미지와 함께 결코 평탄할 수만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일깨워준 교훈적 암시 같기도 하다.특히 선은 한국의 대표적 투수라는 커다란 이름의 무게와 지나친 국민들의 기대,일본 선수들의 심한 견제와 문화차이 그리고 팀으로부터의 과부하등 진작부터 정신.육체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문제가 있었다.릴리프 에이스로서선에게 지워질 짐은 간단하지 않다.지난해의 주니치는 팀 방어율4.75.실점 6백51.허용 홈런 1백 70개로 리그 최하위를기록했다.특히 구원투수의 무기력은 정평이 나 있어 선발투수진의방어율이 4.49인데 비해 구원투수의 방어율은 5.34에 불과하다. 주니치 구단이 연봉과 이적료를 합쳐 6억엔(추정)의 거금을 쾌척하면서 선을 스카우트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선을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부르고 있다.
다저스의 노모가 올시즌 벽두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은 각 구단이 비디오 테이프와 스코어러의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한 결과라는것이다.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을 우롱했던 그의 포크볼은 대부분 볼로 연결된다는 분석에 따라 타자들은 낮은 포크볼 은 거들떠보지않았으며 직구만 노려 홈런을 날리곤 했다.
같은 논리로 선에 대한 연구도 끈질겨 그의 주무기인 슬라이드는 커팅으로 투구수를 늘리게 하는등 그를 무력화하려는 여러가지시도가 있었다.그의 3군(재활군)행은 따라서 정신.심리적 압박의 소산으로써 적절한 대응처방을 필요로 한다.독 수리는 졸듯 하는 자세로 버티며 호랑이는 앓는 형상으로 걷는다(채근담)고 했던가.자신에 대한 축소위장술이 창공을 제압하는 맹렬한 속성,형형한 눈빛과 압도적인 폭발력을 은밀하게 내장하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이 국보 투수로 하여금 초심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2보 전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노모의 대성공이 히노마루(일본 국기)를 의식하지 않은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승부의 세계는 결과적으로 누 가 승자이냐가 중요할 뿐이다.모든 속박과 번뇌에서 자유로워질 때 선동열은다시 태어날 것이다.
〈KOC위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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