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설 苦談.신변잡기로 퇴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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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요즘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작가의 작품들이 신변잡기나 옛날이야기로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신예평론가 양진오(梁鎭午)씨는 곧 나올 『문예중앙』여름호에 실릴 평론 「보이지 않는 전망,전망없는 소설」에서 양귀자(梁貴子).김 형경.신경숙(申京淑).배수아.송경아씨 등의 작품을 살피면서 옛날이야기나 신변잡기,또는 가짜 이야기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양귀자씨의 베스트셀러 장편 『천년의 사랑』은 비합리적 주제나그러한 주제에 어울리는 인물이 설정되고 사건이 전개된다는 의미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이 아니라 옛날이야기인 로망스에 불과하다는게 梁씨의 평이다.때문에 이 작품이 여러 독 자를 사로잡는감동도 신선한,창의적인 감동이 아니라 관습적 감동에 불과하다는것.수없이 『춘향전』을 보아도 이도령의 춘향 구출 장면에서는 매번 눈시울을 붉히는 것과 똑같은,관습적인 감동밖에 『천년의 사랑』은 못주고 있다는게 梁씨의 지적이다.
나아가 梁씨는 『「천년의 사랑」이 설화적 진리가 근엄한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제 힘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생기 넘치는 소설』이란 문학평론가 장경렬씨의 평도 비판한다.설화적 차원에서 전승되는 이야기소(모티프)가 소설로 격상되려 면 그 모티프의 재해석내지 새로이 변용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있어야한다.그러나 『천년의 사랑』에는 이러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설화적 재미만을 적당히 활용한 통속적 읽을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김형경씨의 『세월』과 신경숙씨의 『외딴 방』을 살피며 梁씨는 이 두 장편이 신변잡기식 회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두 소설 모두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자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도대체 반성적사유가 없다는 것이다.자전적 소설의 의미는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두 작품은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면서도 흥미 본위로 과거를 합리화내지 미화시킨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또 한창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90년대 신세대 대표작가로 떠오르고 있는 배수아.송경아씨의 작품에 대해서도,裵씨는 덜익은 문장의 이국적 취향으로 삶에 대한 고통의 포즈만 취하고 있으며宋씨는 존재에 대한 성찰없이 기성의 것들은 무조 건 가짜의 것으로 돌리는 가짜소설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귀자.김형경.신경숙씨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며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해 이미 문학성도 검증받았다.또 배수아.송경아씨는 앞세대와는 전혀 다른 주제와 문체로 차세대 소설 주자로 한창 각광받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평가와 각광 뒤에는 작품을 많이 팔려는 상업적 저의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 또한 일고 있다.작품 발표나 출간 즉시 칭찬만 일삼는 소위 「주례비평」만 무성한평단 풍토에서 梁씨의 이러한 혹평은 적잖은 논란을 부를 것같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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