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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투병5년 변종하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제기랄!』『내가 왜 병자야?』 식물인간에서 다시 한 사람의온전한 화가로 화단에 돌아온 변종하(卞鍾夏.70)화백은 5년여의 투병생활 동안 매일 일기를 쓰듯 한손 안에 들어오는 엽서만한 종이 위에 자화상을 그렸다.
어떤 날은 마비된 손이 너무 절망적으로 느껴져 욕도 해보고 자책도 해보지만 또 어떤 날은 『나는 살아있는 날까지 의연해야지』라고 새로운 결심에 찬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눈이 잘 안보이고 손도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통스런 나날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어린 아이의 작품처럼 단순하고 해학적으로 담은 卞화백의 자화상 1백29점이 5월6일 서울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첫선을 보인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이 모두 다른 표정을 하고 있어 재미있다.卞화백 얼굴 위에 부인 얼굴을 그려놓은 『마누라가 나보다 더 잘나 보이던 날』이라는 작품이나 일이 잘 안풀려 시무룩한 날 그린 『나는 모든 일이 후회막심하다』는 작 품 등 일상의 연속을 담고 있다.
卞화백은 지난 88년 뇌혈관 경색증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1년6개월여동안 식물인간 신세를 졌다.90년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 한쪽 눈과 한쪽 손이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어지럼증으로 일어서기도 힘든 가운데 오른손 회복 기미가 보이자 마비를 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3월 갤러리현대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렸던 卞화백의 10년만의 대규모 개인전 「서정적 풍경」이 병상에 눕기 전 미완성 작품을 완성해 선보인 것이라면 이번 전시 「하늘은 늘 푸른 잔디밭」은 5년동안 병을 극복하기 위해 땀 흘 린 작업들을보여준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 전시 이후 1년동안 심혈을 기울여작업한 파스텔 판화 작품 10점도 선보인다.
卞화백은 『드로잉을 완숙하게 표현할줄 아는 사람만이 파스텔을제대로 쓸줄 안다』며 최근 파스텔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이번에 선보이는 판화는 파스텔 원화의 섬세한 선을 수십번의실패 끝에 석판화 기법으로 완성한 것.
이외에 2백50여년전 단절된 노란빛을 띠는 황백자 기법을 재연한 자기 위에 그림을 그린 도화(陶畵)작품도 출품한다.
이번 전시는 18일까지 계속된다.(02)544-8481.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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