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베트남 휴전협상서 원용-3자회담안 과거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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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한.미 양국의 한반도 평화 4자회담 제의에 대한 대응카드로 「조건부 3자회담」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진행된 일련의 북.미 실무접촉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북한은 북.미 관계의 궁극적인 개선을 위해 남한과의 대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남북한과 미국이 원탁에 둘러앉는 3자회담을 신중히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본지 4월27일자 1면 참조> 전문가들은 평양이 검토중인 3자회담의 원조는 지난 78년2월의 「2단계3자회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때까지 남북 직접 정치협상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던 김일성(金日成)은 유고의 티토 대통령을 통해 미국측에 2단계 3자회담을 제의했 다.북한과 미국이 1차로 양자회담을 열고남한을 나중에 끼워주는 식이었다.
북한의 그같은 아이디어는 베트남 휴전협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시 월맹은 휴전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핵심사안을 사전협의.처리하고 나중에 월남을 들러리로 끼워줬는데 북한도 이를 한반도에 응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제의는 남북 당사자 원칙을 고수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에 의해 즉각 거부됐다.
그러나 朴대통령은 그로부터 1년4개월뒤인 79년6월 북한에 거꾸로 3자회의를 제의하게 된다.물론 당시 한.미가 제의한 것은 북한식 3자회담이 아닌 「3당국 고위회담」이었다.즉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남북회담 사무국의 정석홍(鄭錫弘)자문위원은 『당시 우리는 3당국회담을 하고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할 수 없이 미국에 끌려갔다』고 회고했다.그러나 김일성이 다행스럽게도(?) 이같은한.미정상의 제의를 거부,3당국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북한은 84년1월부터는 「북.미평화협정,남북한 불가침선언」으로 좀더 정교해진 형태의 2원화된 3자회담 제의를 들고 나왔다. 그후 3자회담은 북한 외교의 「비책(비策)」으로 자리잡아 북한은 군사당국자 3자회담(86년6월),남북한과 미국외무장관이 참여하는 3자외상회담(87년 8월)등 포장지와 내용물을조금씩 바꾼 「유사품」을 계속 선보여왔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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