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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베를린 닮은 미 상·하원 식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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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the Capitol)은 워싱턴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1793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초석을 놓은 지 70년 만에 완공된 이 건물은 가운데 우뚝 솟은 돔 중앙을 경계로 상원(북쪽)과 하원(남쪽)으로 나뉜다. 상원 쪽 1층엔 장식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그의 적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이 가끔 찾는 상원 식당(the Senate Dining Room)이다.

이곳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상원의원과 가족, 상원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상원의원과 동행하거나, 상원의원의 편지를 소지해야 입장할 수 있다. 출입이 배타적인 이곳의 음식값은 그리 비싸지 않다. 그런 데서 식사를 한다는 건 특권을 누리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낮이든, 저녁이든 상원 식당엔 빈자리가 많다. 점심때 상원 관계자들은 가까운 곳을 놔두고 하원 쪽으로 건너간다. 상원의원이 그곳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음식과 서비스가 너무 수준 이하(noticeably subpar)이기 때문”이라고 상원 운영·행정위원장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민주)은 지적한다.

반면 하원 쪽 식당은 매우 붐빈다. “메뉴가 다양하고 음식이 좋기 때문에 상원 사람들은 걷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공화당 존 코닌 상원의원의 대변인 브라이언 월시)고 한다. 미 의회 관계자들은 상원 식당을 ‘동베를린’, 하원 식당은 ‘서베를린’에 비유한다.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상원 식당과 20여 년 전 민영화한 하원 식당의 수준은 냉전시대의 동·서 베를린처럼 큰 차이가 난다는 뜻으로 그러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상원 식당은 천하태평이다. 맛없는 음식에 질린 손님이 발길을 끊어도 새 메뉴를 개발하거나 음식의 질을 높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사가 안 돼도 식당 지배인이나 종업원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고당할 리 없고, 급료가 깎일 리 만무한 ‘신이 내린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원 식당(의사당 바깥의 3개 상원 건물 식당 포함)이 1993년 이후 쌓은 적자는 1800만 달러에 달한다. 올해엔 200만 달러의 적자를 보탤 것이라고 한다.

하원 식당은 뉴욕 레스토랑 연합회가 운영한다. 이 식당은 수개월에 한 번씩 메뉴를 바꾸고 참신한 음식을 내놓는다. 그러니 번창하고, 흑자를 낸다. 93년 이후 연합회가 커미션조로 하원에 준 돈은 1200만 달러나 된다. 이런 하원 식당을 보고 상원은 마침내 교훈을 얻었다. 상원은 얼마 전 상원 식당을 민영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조를 의식한 민주당 의원 일부가 “식당 노조원의 고용상태가 불안해진다”며 반대했지만 그러한 주장은 “세금을 그만 낭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압도당했다.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정부가 잘못 운영해온 책임을 납세자의 부담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공기업 민영화 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던 기획재정부도 공기업 선진화 1차 계획이란 걸 내놓았다. 정부가 할 일에 비하면 미 상원 식당의 민영화는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다. 민영화할 대상이 많고, 덩치가 크며, 노조의 저항도 거셀 테니 상원 식당의 사례는 참고할 게 못 된다고 생각할 정부 측 관계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그건 미 상원이 노조의 권익을 위해 국민 세금이 제물로 쓰이는 걸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행동하고 나선 점이다. 늦게나마 기본원칙에 충실하게 움직이는 미 상원의 모습은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하면서 ‘선진화’ 구호를 외치는 한국 정부의 위선적 태도보다 선진적이지 않나 싶다.

이상일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