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과의 공생법 배울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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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천하 사상에 젖은 중국 대신을 임명할 경우 외국 국왕에게 삼궤구고의 예를 행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면 외국 사절도 중국 황제에게 삼궤구고를 하지 않을 게 아닌가. 외국인에게 이 일을 맡기면 약점 잡힐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1867년의 일이었다. 영국은 1793년 조지 매카트니를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청에 보냈다. 삼궤구고가 걸림돌이 됐다. 매카트니는 두 무릎을 꿇는 건 하나님 앞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버텼다. 청은 꾀를 냈다.

건륭(乾隆)제 뒤에 영국 국왕의 초상화를 걸자고 했다. 청이 보기엔 황제에게, 영국에는 국왕에게 예를 올리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매카트니는 거부했고 결과는 무실적 귀국이었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세계 100여 정상급 지도자들이 모였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엔 25명의 정상이 참석했으니, 실로 엄청나게 늘어난 숫자다. 유엔총회를 능가한다는 평마저 나온다.

각국 정상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베이징에 집결한 이유는 무얼까. 한마디로 눈도장 찍기다. 세계의 강자로 급부상 중인 친구의 초청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8일 후진타오 주석이 베푼 오찬 때는 세계 정상들이 도착 순서대로 줄을 서 기다렸다가 후 주석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30분 가까이 줄을 선 정상도 있었다. 세계 초강국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그럴진대 남들은 말해서 뭣하랴. 현대판 삼궤구고가 연상되는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부시는 방중 기간 주중 미국대사관 개관 기념식에 참석해 종교와 정치의 자유를 강조했다. 개막식 미국 선수단 입장 때는 수단 난민 출신의 선수에게 성조기를 들게 했다.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수단에 이런저런 지원을 하는 중국의 심기가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푸틴 총리의 러시아 또한 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그루지야와 전쟁에 돌입했다. 올림픽 기간 ‘전쟁 제로’를 기원한 중국이 무색하게 됐다. 허나, 그렇게 한들 눈도장 찍으러 베이징에 왔다는 이미지가 희석될까.

세계 정상들의 베이징 집합은 싫든좋든 중국의 부상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올림픽 개막식 사상 최초로 100여 세계 정상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진 중국의 파워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국 셰필드대학 불평등연구소는 2015년이면 중국이 19세기 중엽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아편전쟁 이전 시대의 국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왕의 귀환’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 같은 상황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강한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위상이 달라지는 이웃과의 공생법을 학습해야 한다. 아직도 1992년 수교 당시의 낡은 시각으로 중국을 봐서는 낭패다. 경제 전략부터 새롭게 짜야 한다. 이미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됐고,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는 중국의 현실에 맞춰 우리의 산업전략을 전면적으로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는 중국 경제의 변화에 부응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외교·안보 전략도 조정을 요한다. 세계 열강의 한반도에 대한 접근이 군사 개념보다는 경제·문화 부문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한·중 관계가 한·미 관계의 하부 구조로 작용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 제품 없이 생활하는 ‘차이나 프리’는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란 인자를 고려하지 않고 이뤄질 일은 이젠 거의 없다. 자나깨나 중국을 생각할 때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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