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文學실험>5.해체소설가 최수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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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흔히 문학에서의 실험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문학적 형태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이 말 그대로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되든,아니면 대중의일반적인 정서를 무시하고 기발함이나 난해함만을 앞세우는 것으로평가되든 여하튼 부단히 달라지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파악되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그러나 나는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조금 거리를두고 있다.나는 실험 문학,특히 소설은 뒤를 돌아보는 것 혹은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 한다.말하자면 바람직한 의미에서의 실험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애초에 지니고 있었던 잠재력,즉 출발의 정신을 그 시대에 맞게 되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의 정신이란 적어도 내게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방식의 모색을 의미한다.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되면서 시작된 그러한 모색이 각 시대의 고유한 특성과 만나 그때마다 독자적인 소설 형식을 이루게 되는 것이며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실험적 소설이 끊임없이 새롭게 쓰이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그렇게 볼때 실험 소설에 있어 중요한 것은 소설가가 새로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해 적절하게 비판적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형식을 확보하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하게나마 나의 소설이 다소간의 실험적 경향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선 현실의 일화들을 꿰맞춰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가급적 피하는 데서 비롯된다.
애초 소설이 현실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를 제대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기반성적인 노력을 통해 진보를 거듭해왔듯 내게 있어소설은 나의 반성적인 의식에 포착되는 현실의 양상을 정확히 재현하는 데 바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무엇보다 소설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의 문제에 대해 재고하려는 뜻과 결부돼 있다.잘라 말하자면 나는 나의 소설에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감동,즉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독자가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때 생겨나는 감동을 배격하고자 한다.거기에는 기성적인 질서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와 의심이 결여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독자에게서 일으키고자 하는 반응은 만족이 아니라 차라리고통이다.그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먼저 그 고통을 겪었고,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으며 즐거움이나 감동보다 바로 고통 속에서 우리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차원에서 공감대를 이뤄 고통스런 상황을 해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시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나는 실험적 소설에 거의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난해함과 이념성을 어느 정도 거둬들이고 있다.
시대적인 대세를 전적으로 도외시하는 대신 가능한 한 그것과의만남을 꾀하려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여러 독자들이 내게 지적했듯 그것은 어쩌면 진보의 이름으로 퇴행을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 나는 나 뿐만 아니라 다 른 모든 작가들에게서 과도기적 증후를 읽고 있다.매순간 그러했듯이 우리에게진정한 시작과 출발은 이제부터다.
최수철(崔秀哲.38)씨는 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공중누각』『화두,기록,화석』『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4부작,『불멸과 소멸』등 10권의 소설집을 펴냈다.「무정부주의자」연작의 표제가 말하듯 崔씨는 기존 소설 문법 모두를 파괴하는 실험을 벌였다.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주인공도 없이 작가와 독자가 모두 작품에 참여하게 했는가 하면 소설 전개의 순차적 시간도 무시해버렸다.그러면서 崔씨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독자의 외로운 의식을 만나게 했다.익명성.대 중성에 앗겨버린 너와 나의 1대 1의 진정한 만남의 장을 소설로 실현해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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