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우물 안 개구리를 꾸짖는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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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13억 인구의 거대한 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충격이었다. 중국인들은 개막식에서 “이게 중국의 힘”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비슷한 느낌을 찾아 내 기억은 1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봄 나는 베이징의 한 식당에 있었다. 한국 기업이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공장의 기공식에 참석한 뒤였다. 그때의 2000만 달러는 아침 출근길에 우리 일행이 탄 버스 행렬의 앞 뒤에서 중국 공안들이 길을 트게 했다. 식당 종업원과 필담을 나누던 중 이렇게 물었다. ‘世界最富國(세계최부국)?’ 종업원은 망설임없이 ‘韓國(한국)’이라고 적었다. 수교를 전후해 돈을 뿌려댄 한국의 크고 작은 부자들 덕분이었다. 잠시 후 종업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냅킨에 ‘未來最富國=中國(미래최부국=중국)’이라고 적었다. 그러곤 나와의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됐다.

기억은 4년 전에도 머문다. 2004년 미국에서 연수할 당시 함께 강의를 듣던 중국 학생이 있었다. 남편과 딸이 쓰촨성에 산다는 그녀는 국비를 지원받아 혼자 미국을 체험하러 왔다고 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학생식당에서 청소를 하면서도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며 내 자존심을 긁곤 했다. 그해 뉴욕 타임스는 중국 특집기사를 쏟아냈다. 2005년 1월엔 10년 내에 미국을 추월할 나라로 미국 대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중국을 꼽았다는 여론조사 기사도 내보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중국에 대한 단상을 이처럼 현실로 불러냈다. 이 올림픽 이후 중국은 중화사상의 전파에 더 공격적으로 나설 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독도를 놓고 벌여온 일본과의 외교전보다 한층 버겁고 각박한 경제·외교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기억은 이명박 정부의 실력이 중요하다는 데로 이어졌다. 따지고 보면 이 정부는 불운하다. 취임 초기의 시행착오를 용서받을 수 있는 허니문을 4월 총선에 빼앗겼다. 초보운전 딱지를 떼기도 전에 낸 사고의 뒷수습으로 연일 허둥거렸다. 그게 이 정부가 가진 실력의 전부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쯤 시행착오를 반추해 볼 기회는 줘야 한다는 쪽이다.

올림픽은 종목별로 나뉘어 맨몸으로 순위 경쟁을 한다. 그 경쟁은 순수하고 선명하다. 이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잠시 우리 안의 싸움에만 매몰돼 보지 못했던 더 큰 경쟁을 실감해야 한다. 5000년 역사의 어느 한 매듭에서도 빠지지 않는 질긴 인연의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더 실감나지 않는가.

무엇보다 이 정부의 상대가 좁은 나라 안의 반대편 이데올로기나 과거 정권이 아님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실용정부의 목표가 대한민국의 진보와 싸워 이기는 게 될 순 없다. 그러는 순간 국민의 절반과는 적이 되고 만다. 이미 전 정부 5년 동안 볼 만큼 봤다. 이데올로기 내전이 치명적인 건 사실보다 가설이, 이성보다 감정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은 실용을 어젠다로 삼자고 결의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서로 패를 갈라 갈등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진 않았을 게 아닌가.

이런 정책이 버젓이 발표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시위대를 연행해 구속시키면 시위대 1인당 5만원, 불구속이면 1인당 2만원의 성과급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 듣기 좋으라고 한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듣게 된 건 더욱 유감이다.

“어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부시 대통령을 환영했습니다. 뒷전에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제한적이었습니다.”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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