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5공부패' 부른 기업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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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공초 석유파동으로 쓰러져 가던 경제가 일어난 것은 업종전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5일 열린 비자금 공판에서 전두환(全斗煥)씨는 집권 초기 재벌소유의 계열기업 정리가 기업들에 압력수단으로 작용했다는 검찰 지적에 이렇게 반박했다.
全씨는 『당시 재벌기업은 손 안 대는 분야가 없어 금융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강력히 통제했다』며 『대기업이 아이스크림까지 만드는 것은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5공 경제실무자들 덕택으로 경제가 소생한 것』이라며 『옆에 있는 사공일(司空壹)박사는 그 업적으로 지금도 전세계를 돌며 경제회생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全씨의 이같은 주장은 언뜻 맞는 말처럼 들린다.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5공 경제의 지표상 실적을 보면 수긍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꼼꼼히 살펴보면 全씨의 이러한 발상이 과도한 정부개입을 유도했고 각종 규제는 기업들이 정.관계 실력자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게 되는 부패구조를 잉태한 근인(近因)이 됐다는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선 5공정부의 산업합리화 정책은 일부 기업들에 특혜를 안겨주는 「형평성」문제를 야기했을 뿐 아니라 산업 효율면에서도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해운산업합리화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全씨는 『해운업이 사양산업이 돼 가고 있는데 업계는 고물선박을 신형이라고 사오는 일도 있을 정도로 과당경쟁에 빠져 있었다』며 『당시 정부의 통폐합조치는 경쟁력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해운산업연구원(KMI)은 84년부터 시작된 해운산업합리화 조치에 대해 대외경쟁력을 그 이전보다 약화했다는 악평을 내리고 있다.
특히 한일.동남아.원양 항로로 면허구역을 나눠 영업망 확대를봉쇄한 조치는 한일항로를 운항하는 해운회사들의 연쇄부도를 낳는등 업계의 국제경쟁력을 후퇴시켰다는 지적이다.
결국 全씨가 강행한 기업 통폐합조치는 시드 머니(종잣돈)와 특혜금융을 통해 정리대상 부실기업을 인수한 재벌들만 살찌게 했을 뿐 업계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업들이 특혜를 노리고,혹은 살아남기 위해 청와대에 뭉칫돈을 건넴으로써 부패구조에 합류하게 되는 부작용만남겼다. 소수의 권력자와 경제관료들이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기업의 업종까지 마음대로 분할.선택하는 비정상적인 경제환경 조성이 정.경 유착 등 각종 비리를 양산한다는 교훈을 全씨 비자금사건은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정철근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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