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對北정책 중심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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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북(對北)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수개월 전부터 예상돼 온 총선이 끝나자 과연 한.미(韓美)의 정책방향이 급선회하고 있다.한국은 북.미(北美)관계와 남북대화가 연계돼야 한다는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고,미국은 한반도 평화구도가 남 한의 주도로진행돼야 한다는 등 한국의 체면을 살려 주면서 「남한과 분리된」 북한과의 협상채널을 확보한 셈이다.
이번 제안은 또 「총선전 대북정책 변화 불가」로 조율돼 온 북한카드가 이번에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에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클린턴 정부로서는 북한과의 미사일회담과 미군유해 송환협상 등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정착 가능성을 부각해 외교치적으로 연결한다면 훌륭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제의를 통해 94년10월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명시됐던 원칙들이 사실상 무너지면서 한.미의 대북정책이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는 사실이다.
북.미관계 개선이 남북대화의 진전과 연계돼야 한다는 한.미간의 사실상 합의가 유명무실해지면서 한국은 「한반도평화를 논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북.미대화의 물꼬를 터 준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과 미국간에는 대북투자 및 경제제재 완화,연락사무소설치,나아가 관계정상화 등 한반도평화와 직접 관계없는 사안이 널려 있다.
미국은 이미 북한체제의 연(軟)착륙을 유도하기보다는 아예 북한을 예인(曳引)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관측돼 북한은 경제제재 완화 등 갖가지 이익을 챙기면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일본도 가세할 전망이다.
북한의 태도에 따른 정부차원의 복안은 이미 마련돼 있겠지만 이번 제안은 북.미 및 북.일(北日) 수교 등이 남북대화와 별도로 진행돼도 무방하다는 의사표시로 국제사회에서 해석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4자회담의 구도 안에서는 북.미간 평화협정도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 과정에서 「당국자간 대화원칙」등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느정도 반영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대통령선거에 푹 빠진 클린턴 정부가 자칫 북.미간 대화의 장만을 열어 준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닐 경우 남한이 배제되는 사태가 얼마든지 전개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다시 대북정책이 과거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면 그 대 가는 엄청나리라는 점을 당국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김용호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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