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서는 왜 앙코르를 연주하지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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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서는 아무리 큰 박수와 함께 ‘브라보’‘브라바’‘앙코르’‘비스’가 터져 나와도 박수소리가 그칠 때까지 동작을 멈춰서서 기다릴 뿐 실제로 ‘앙코르곡’을 연주하는 일은 없다. 지휘자는 곧바로 다음 음악을 시작한다. 드라마와 음악의 흐름을 중단하지 않고 오페라를 한낱 성악적 기교의 과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1898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주역 가수들이 부르는 앙코르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다. 토스카니니는 공연 도중 객석에 입장하거나 귀부인들이 모자를 쓰고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공연 도중 객석의 조명을 끄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연주 도중 떠들고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대본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 게 예사였다. 토스카니니는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2부 순서로 발레를 공연하는 것도 반대했다.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출신이었던 그는 밤늦게까지 지치도록 연주해야 하는 단원들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발레는 오페라 공연이 없는 다른 날에 상연됐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앙코르를 마지막으로 연주한 것은 1933년 로시니‘세비야의 이발사’에 출연한 러시아 출신 베이스 페오도르 샬리아핀이었다. 그후 지난해 2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74년만에 ‘앙코르 금기’를 깬 것은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였다. 도지네티의 오페라‘연대의 딸’ 토니오 역으로 출연한 그는 1막에 나오는 아리아 ‘아 ! 친구들이여, 얼마나 기분 좋은 날인가(Ah! Mes Amis, quel jour de fete!)’를 연이어 두 번 불렀다. 1966년 런던 공연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하이 C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안겨주기도 했던 이 아리아에는 하이 C음이 무려 아홉 번이나 나온다.

지난 4월 1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상연된 ‘연대의 딸’에서도 플로레스는 앙코르 금지법을 깼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토스카니니가 지휘봉을 잡은 이래 앙코르는 사라졌다. 1994년 ‘토스카’로 메트에 출연한 파바로티가 2막에서 앙코르를 부르면서 금기가 깨진 지 14년만에 다시 앙코르가 등장한 것이다.

‘연대의 딸’ 메트 공연을 앞두고 총감독 피터 겔브는 플로레스를 조용히 만났다. 뉴욕에서도 앙코르를 부를 지 의사를 미리 물어본 것이다. 플로레스는 관객의 호응이 뜨거우면 못 부를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아리아 열창이 끝난 후 분위기를 감지한 총감독 전용 박스석에 앉아 있던 겔브는 무대감독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기 중이었던 무대감독은 지휘자에게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휘자 마르코 아르밀리아토는 앙코르를 뜻하는 손가락 두 개를 치켜 들고 플로레스의 표정을 살폈다. 테너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앙코르를 부르겠다는 표시였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들고 아리아를 다시 연주했다.

지난 1월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도 플로레스가 같은 작품을 연주했지만 그때는 앙코르 연주가 없었다. 극장 측이나 지휘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앙코르 연주는 불가능하다. 주역 가수들이 너도 나도 앙코르를 부르겠다고 나선다면 공연 시간은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고 작품의 흐름이 군데군데 멈춰 설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독창회에서야 본인이 마음 먹기에 달렸지만 오페라 공연 때는 사정이 다르다.

파바로티도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를 자주 부른 가수 중 한 명이다. 1987년 2월 16일 파리 오페라에서 ‘사랑의 묘약’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연거푸 불렀다. 100년전까지만 해도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 연주는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1890년대 몬테비데오에서 테너 페르난도 데 루치아는 ‘리골레토’중 ‘여자의 마음’을 무려 네 번이나 불렀다. 반복할 때마다 카덴차(끝부분의 장식음)을 바꿔 불렀다. 테너 엔리코 카루소는 같은 아리아를 반복할 때마다 카드 한 벌씩을 가져오게 해 객석으로 날리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독창(아리아) 앙코르보다는 중창(앙상블)의 앙코르를 즐겨 연주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의 ‘나부코’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오페라 무대에서도 즐겨 앙코르로 연주된다. 1842년 초연 때부터 생긴 전통이다. 이탈리아 제2의 국가처럼 불리는 곡이기 때문이다.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1986년과 1996년에 이 곡에 대한 앙코르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뉴욕 메트에서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허용하는 유일한 앙코르다. 1984년 베르디의 ‘제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인’에 나오는 합창곡도 두 번 연주됐다. 1896년 푸치니의 ‘라보엠’이 팔레르모에서 상연됐을 때 관객들은 4막 전체를 다시 연주해달라고 요청했다.

독일 작곡가 크리스토프 글룩(1714∼87)이 오페라 개혁을 선언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페라 무대는 프리마돈나의 입김으로 난장판이었다. 특정 가수를 염두에 두고 아리아를 작곡했다. 몇 차례나 반복해서 아리아를 앙코르로 연주했으며 악보에는 나와 있지 않는 장식음을 마음대로 길게 늘여 붙여 부르기도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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