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4자회담 제의 의의와 한반도 정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미정상이 16일 제주에서 발표한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 개최 제의는 한반도의 평화문제 해결에 한.미 양국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사건」이다.이에 따라 한반도 안보정세는 큰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본지는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과 김학준(金學俊)단국대이사장을 초청,4자회담의 의미와 향후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는 긴급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註] ▶김학준=정상회담 합의내용 중 제일 중요한 것은항구적 평화협정이 마련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이 유지돼야 한다는점을 확실히 해둔 대목입니다.이는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 노력이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이 와 함께 북한의 판문점 도발 당시 러시아나 일본 등 전세계 각국이우려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한반도 평화문제를 다루는 4자회담 제의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것입니다.
▶김경원=이번 4자회담 제안은 우리의 정책기조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첫째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는 전제를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라는 점입니다.국제법적으로 정전협정이 오랜기간 유지될 경 우 정전협정을 바로 평화협정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있으나 우리 정부는 새로운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미국과 북한간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해왔습니다.그런데 이번 4자회담은 사실상 미국.북한간 논의의 창구를 열어준 것이라는 점이 주목됩니다.
▶김학준=그 의견에 공감합니다.사실 북한이 74년 3월부터 북한과 미국사이에만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만94년 4월에 제안할 때는 표현상 변화가 있었습니다.기존의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를 「새로운 평화체제」라는 말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이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문제를 반드시 협정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좋다는 뉘앙스를 가져 신축성을 보인 대목입니다.이와관련해 저는 이번 발표내용중 『양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화해와평화를 위해 적극적이며 열린 마 음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한 대목에 대해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적극적이고 열린마음으로』라는 표현은 기존관념에 얽매이지 말자는 뜻으로 풀이됩니다.미국과 북한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어서는 안된다고 해온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제의에 어떤 신축성이 있다면 그 제의를 배제하지 말고 함께 검토하기로 하자는 뜻이 담겨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일종의 새로운 틈새를 여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경원=한반도에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평화협정이 없어서라기보다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이나 분단구조 등 보다 실질적인문제에 기인한 것입니다.이렇게 볼때 평화협정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제 일 의미 있는것은 신뢰구축조처(CBM) 분야라고 생각합니다.이 분야에서 남북한이 수용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조처가 마련돼야 합니다.한편 북한의 의도를 따져보아야 합니다.북한이 정전협정을평화협정으로 대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협정의 내용보다는 협정이갖는 정치적 상징성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도래했으므로 자연히 주한미군은 더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정치적 분위기가 미국내에서나 국제사회에 확산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은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안보의미를 남북간 대치관계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동북아전체의 세력균형이라고 하는 보다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지정학적 균형유지에 연결시켜 생각할 때가 된 것입니다.차제에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한 만큼 주한미군의 역할 문제를 한단계 앞서서 생각하는 개념의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학준=이번 8개항 공동성명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용어가 바로 항구적 평화라는 말입니다.거의 모든 항목마다 항구적 평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어찌보면 클린턴 대통령의 대선전략과도연관돼 있다고 봅니다.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 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겁니다.물론 항구적 평화를 한반도에 이룩한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고 따라서 그런 것가지고 시비할 생각은 없습니다.다만 4자회담이 성립된다고 하면여러가지 형태의 회담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4자회담에 미.북대화,남북대화,한.중대화,미.중대화 등 여러 갈래의 양자회담이 포함되는 것이 가능하므로 4자회담 틀안에서 미.북대화가 진전 될 수 있는 틈새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든 4자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한반도의 긴장완화를 향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또 발표문에 중국의 협력을 중시하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앞으로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발생할 때 중국이 평화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을 바라는 한.미 양국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김경원=저도 4자회담 제의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첫째는 싸우는 것보다는 대화하는 것이 좋지요.그리고 한반도문제에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나라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런 점에서 4자회담이 가장 현실성 있는 틀입니 다.두번째로북한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한.미간에 아주 굳건한 의지를 과시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선언적 외교(public diplomacy)측면 말고도 실제 협상국면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우선 북한이 협상에 응하고 나왔을 때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을 겁니다.평화협정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상황이 무엇이냐,그런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북한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내야 하느냐 등을 미리 생각해 둬야합니다. 한편 북한이 우리의 제의를 거부하고 나올 경우 전보다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북한이 거부하면 우리는 당분간 새로운 제의를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그에 대한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북한이 거부 하고 나왔을 때 우리는 정전협정이 계속 유효하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학준=이번 발표문에 최근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비난이나 비판은 아니라 하더라도 예컨대유감의 표시정도는 있었으면 했는데 전혀 없습니다.이는 한.미 양국 모두가 어떻게 하든 북한을 4자회담에 끌어 내려는 의지 표현으로 읽힙니다.그래도 최근에 북한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걱정시켰고,국제사회에도 걱정을 시켰습니까.한마디쯤은 짚고 넘어갔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될 법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4자회담 제안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한반도문제와 관련해여러가지 형태의 유관국 회의 제안들이 있었습니다.4자외에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시키는 6자회담 방안이나 8자회담안 등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사실 한반도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주변국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 다.그래야 한민족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있는 여지가 넓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4자회담 방안은 한반도문제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나 러시아가 참여할 수 없다고 하는 뜻도 담겨 있다는 점에서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강영진.김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