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바터를 활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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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랑스 남부해안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피카소를 비롯한 인상파화가들의 초기작품들이 수십점 소장돼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연인즉 이 화가들이 아직 유명해지기 전 숙식을 제공받은 대가를 자기들의 작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말하자면 바 터(물물교환)다. 요즘은 바터가 불가능한 것일까.화폐사용이 일반화되고 기업간의 대차관계가 은행을 통한 상계(相計)로 끝나는 판에 무슨호랑이 담배 먹던 때 이야기냐고 일소(一笑)에 부칠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 보자.광고료 대신 엔진을 받아 동유럽에 보내고 그 대가로 자동차를 받아 아프리카로 싣고 가서는 면화나설탕과 맞바꾸는 것이 도무지 불편하게만 여겨지는가.파리에 있는바터 전문중개회사 BIG의 니콜라스 루프라니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연간 바터규모가 75억달러(5조8천억원)에 이르고연15%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유럽에서도 개인간에 널리애용돼 온 바터가 5년전부터 기업간의 거래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터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기업들이 재고를 밀어내거나 마케팅에 실패한 신제품을 처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놀리고 있는 생산설비를 활용하는 등의 목적에 바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이 드러날 경우 이미지가 나 빠질까봐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여하튼 최근에는 바터전문중개회사들도 생겨났고 이들을 묶은 협회도 구성됐다.
여러 업종에 걸쳐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바터를 활용할 길은 없을까.바터는 구조조정이 한창인 국내산업계에 「현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변동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이 금리변동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려고 고정금리와 맞바꾸는 계약을 은행과 체결하는 스왑거래도 일종의 바터다.최근에 갑자기 관심을 끌고 있는 인수.합병(M&A)에서도 피인수회사의 주식을 반드시 현금으로 살 이유가 없다.「피인수회사 주식 3주당 인수회사의 주식 1주」하는 식으로 주식과 주식을 맞바꾼다는 말이다.
물론 적정교환비율의 결정이 현금매수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증권회사나 기타 M&A중개기관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현금매수의 경우 매수가격을 지나치게 높거나 낮게 책정함으로써 발생하는 합 병손실 또는이득이 전적으로 인수기업에 귀속되지만 주식교환의 경우는 합병후인수기업의 주주가 될 피인수기업의 주주와 이를 나눈다는 점이다.「시장이 결정하는」기업가치,즉 주가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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