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스타스토리>이강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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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강토의 연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실감」이다.그의 출연작을더듬어가다보면 리얼리티를 향한 그의 철저한 실험정신과 만나게 된다.그것은 89년 『오,한강』에서 분수령을 맞고 91년 『아스팔트의 사나이』로 화려한 폭발을 한다.
『오,한강』에서 그는 절망의 시대를 철저히 고민하는 지식인이었다.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쟁포로가 된다.석방후 남한에서 화가로 변신해 결혼,중년의 나이가 돼서는 장성한 아들의 데모를 지켜보게 된다.작가 최인훈의 『광장』을 연상케하는 전형적인 이데올로기 극이다.아역부터 노역까지무리없이 소화해낸데다 절망의 시대를 화폭에 담지못해 고민하는 젊은이의 허무와 좌절을 강렬하게 표출해낸 이 작품은 그를 단숨에 「만화적 리얼리티」의 선구자로■ 불리게 한다.
그의 이런 연기는 세계자동차산업의 현장을 그린 『아스팔트의 사나이』에서 정점에 이른다.여기서 그는 죽음까지 거부해가며 「자동차 한국」의 꿈을 실현하는 젊은이 역을 맡았다.생명연장장치로 연결된채 삶 저너머에서 세계 자동차사의 「빅3 」회장들이 그의 앞에 무릎꿇는 장면을 보며 흘리는 한줄기 눈물.한 젊은이의 야망과 도전의 결정체앞에 마음까지 굴복한 세계 총수들의 항복선언은 몇 안되는 한국만화사의 명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몇차례씩 현지답사하고 철저한 자료수집과 고증을거쳐 극중 소품하나,영어대사 하나까지 정확하게 표현해낸 이 작품은 95년 TV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만화보다는 사진에 가깝고 사진보다는 만화적인 만화.」한국만화사에서 유례드문 실험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는 늘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강해도 안되고 너무 약해도 안됩니다.배경.상대역.스토리.장면등 극중 모든 것과의 조화가 열쇠입니다.』 결국 「리얼리티=조화」가 아니겠느냐는게 그의 말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74년 데뷔 당시의 그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만화 주인공들의 성격과 표정 등을 조합한 듯한 어색함 투성이.그것이 『빛좋은 개살구』에 첫 출연한 그의 모습이었다.
같은해 7월 출연작 『각시탈』에서 뛰어난 무술연기를 선보이면서 그의 일생은 화려한 변신의 첫 걸음을 걷게된다.그후 30㎏의 감량을 이겨내며 아버지의 한이 맺힌 페더급 세계챔피언이 되기까지 처절한 권투인생을 그린 『무당거미』시리즈를 통해 그의 이름은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다.86년 출연작 『카멜레온의 시』는 작품중 인용했던 시구에 감동받은 독자들이 그때까지 먼지만 쌓인채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프랑스 시인 로드레 아몽의 시집을불티나게 사가게 하는 화제를 낳기도 했다.
91년은 그의 연기인생의 절정기였다.『아스팔트의 사나이』와 도박사의 일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48+1』이 모두 이때 나왔다.사실적으로 묘사된 소설을 읽는 듯한 섬세한 내면연기의 달인.
그런 그가 20년 연기생활동안 품어온 화두가 하나 있다.그건「만화적」이란 것의 정의다.
『늘 고민이었습니다.재미있는 소재,무한한 상상력,그리고 그것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표현력,뭐 그런게 만화적인 만화가 아닐까요.』 덤덤한 표정으로 내뱉듯 던져대는 말속에서 그가 걸어온 치열한 연기인생의 편린이 느껴졌다.「가장 뛰어난 것은 가장 흔한 것」이란 평범의 의미를 그는 이미 깨치고 있었다.
▶탄생연도:74년 ▶데뷔작:『빛좋은 개살구』 ▶평균신장:175㎝ ▶평균체중:70㎏ ▶지능지수:110 ▶대표작:『각시탈』(74년)『무당거미』(83년)『오,한강』(89년)『아스팔트의 사나이』(91년)『48+1』(91년)외 다수.
▶성격:남 하는것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외형적,승부근성 강하다.정에 약하고 여자엔 대범.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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