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총선 개표방송 처음부터 헛발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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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1일 오후6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선보인 방송 4사의 투표자 여론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한국 여론조사 시스템의 낙후성을그대로 보여주었다.후보들의 득표율은 고사하고 외국에선 통상 오후8시면 확실하게 결정되는 후보들의 당락마저 밤 12시가 되도록 불분명한 지역이 많았다.이에 따라 각 정당은 물론 시청자들도 시시각각으로 일희일비를 교차해야 했다.이는 TV 3사가 부정확한 자체 여론조사를 경쟁적으로 보도한데서 비롯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KBS.MBC.SBS.CBS등 방송 4사가 공동으로 코리아리서치센터.한국갤럽조사연구소.미디어리서치등 국내5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됐다.전국의 유권자 25만명을 표본으로 한 이번 여론조사는 투표를 마친 유권자 에게 전화를 걸어 누구를 찍었는지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 투표자 전화 출구조사로 표본오차는 ±4.3%.따라서 이 표본오차를 따르더라도 1위와 2위의 표차가 8.6%이하일 경우 당선자가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던 셈이다.실제로 개표율 5%선에서 가동되기 시작한 각사의 분석.예측시스템의 예상득표율은 방송사에 따라적게는 10여석,많게는 30여석까지 사전 투표자여론조사 결과와일치하지 않았다.
개표가 20% 가까이 진행된 11일오후10시 현재 벌써 서울5곳,강원 3~4곳,경북 5곳등 30여곳의 당락이 뒤집어졌다.
이에 따라 KBS측은 당초 개표율 10%면 당락을 거의 확정지어 알려주겠다던 예측보도를 전혀 하지 못했고 선 관위 집계만 내보내다 오후10시40분쯤 개표율이 22%를 넘어서야 비로소 예측시스템을 가동,「당선유력」「당선확정」「당선예상」을 화면에 표기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상당수 당선 예상자가 빗나가는 것은 물론 심지어 득표율이 표본오차 ±4.3%를 훨씬 넘게 차이가 나자 방송사에서마저 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방송사의 자체 조사결과 5개 여론조사기관중 1개사를 제외한 나머 지 4개사의조사는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3사의 개표방송은 시작부터 과열경쟁 양상을 빚었다.KBS가 오후6시 정각 시그널과 동시에 전국 2백53개 투표소의 1위 당선예상자만을 한 화면에 6명씩,6분만에 보도하자 애초에예상의석과 1,2위 예상자를 함께 소개하던 SB S도 5분이 지난 뒤부터 1위만을 보도하는 속보경쟁에 동참했다.그러자 MBC도 당초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보도하려던 방침을 수정,역시속보경쟁에 휘말려 1위만 보도했다.결국 오보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같은 방송사간 과열 속보 경쟁이 오보의 소지를 더욱증폭시키고 만 셈이다.
이처럼 투표자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방송사측보다 근시안적 당리당략을 앞세운 정치권에 근본적 원인이있다.즉 개정 통합선거법에 규정된 투표자 출구조사가 야당의 반대로 5백 거리제한에 묶이자 방송 3사가 출구 조사 자체를 포기하는 대신 궁여지책으로 전화여론조사로 바꾼 것.그러나 통계학적으로 「표본오차 ±4.3%」란 애초부터 예상보도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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