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선관위만 모르는 불법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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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7일 오후1~2시사이 경북예천읍 A후보 사무실주변의 한 중국음식점 2층.A후보 지지자 40여명이 몰려들었다.이날 읍내에서열린 합동연설회에 참석하고 온 지보면의 한마을 사람들이었다.30대 청년이 주문음식을 종류별로 종이에 「正」자 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기자가 사진을 찍고나서 그에게 『밥 사는거냐.누가 계산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후보 사무실에서 체크하라고 했다.계산은 거기서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자신은 『A후보 소속정당의 당원(조회결과 사실)』이라고 했다.그 순간 50대 남자가 나타났다.험악한 인상을 짓더니 『이웃에게 밥도 못사느냐』고 소 리쳤다.곧이어 A후보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왔고 청년은 사라졌다.A후보측의뛰어난 상황대처 능력이 발휘된다.
그는 『동원은 없었고 음식값으로 나간 돈도 없다』고 막무가내로 버텼다.『그 당원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고도했다.선거법위반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사람들이 식사하고나간 뒤 주인에게 물었더니 『계산은 그 청년이 했다』고 말했다. 모든 후보들이 유세장에 사람을 동원한다.세(勢)를 과시,부동표를 흡수하기 위해서다.후보들은 또 사람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어디서든 몰래 밥을 사고 일당을 준다는 것은 공식이다.답답한 것은 선관위만 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선 관위 직원들이 「공명선거」완장을 차고 유세장과 바로 그 주변에만 몰려 있으니 불법이 눈에 띌리 없다.후보가 바보가 아닌한 그런데서 금품을 살포하거나 밥을 살리 없다.동원된 사람들은 특정후보 연설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그들을 따라가면 「돈」냄새를금세 맡을 수 있다.5일 안동갑 선거구 유세때도 기자가 이런 사람들을 뒤따라 가봤더니 한 후보 보좌관이 동원인원 식대를 몰래 주는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본지 4월7일자 23면 보도〉 불법현장이 기자의 눈에는 거듭 띄는데 선관위는 왜 못 보는가.선관위가 정말 공명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완장을 벗고 카메라 렌즈 뚜껑을 열어제치고 동원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추적해야 할 것이다.

<예천에서> 이상일 기동취재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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