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학습도 막는 단협 전교조와 내달 재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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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중 C교장은 5일 출근해 학교 안에서 잠자고 있는 노숙자를 내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교무실에 있는 K교감은 학교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게 일이다. 이달 중순까지 계속되는 여름방학 도중 이 학교 교사 50여 명은 출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입학 서류가 쌓여도 개학 후에나 처리가 가능하다. 이 학교 교사들이 이처럼 방학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2004년 5월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가 체결한 단체협약 덕분이다.

공정택 신임 교육감은 지난달 30일 당선 직후 이런 단체협약을 고치겠다고 밝힘에 따라 교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시교육청은 다음 달 전교조를 포함한 교원노조와 단체교섭을 벌여 전임 교육감이 체결한 단체협약 중 일부 내용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방침이다.


현행 교원노조법에는 교사(조합원)의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한 사항만 단체협상 대상이다. 하지만 당시 협약에는 중학교의 방과 후 학습은 특기 적성교육만 가능하고, 보충 학습은 할 수 없도록 제한하거나 학업성취도 평가는 표집 대상 학교에서만 실시하도록 제한한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사립재단 내 교사 전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교조는 사립학교 교사의 전보와 관련해 교사 본인의 동의를 얻도록 요구해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받아들였다. 사학들은 “사학재단과 전교조가 논의해야 할 교사 전보를 단체협약에 넣은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을 해 왔다.

서울 대치초등학교 서철원 교장은 “방학 중 교사들이 나와 근무하는 학교는 전체의 3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전교조가 요구하는 대로 다 받아 준 단체협약 때문에 이후 학교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2004년 5월 이후 단체교섭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전교조·한국교원노조·자유교원노조 등이 공동교섭단을 구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단체협상 재협상을 못 한 이유는 교원노조 중 자유교조의 교섭위원 참여 수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말했다.

강홍준·백일현 기자

◇교원 단체협약=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또는 시·도교육감이 전교조 위원장 또는 시·도지부장과 단체교섭을 벌여 체결하는 협약이다. 협약에는 임금 및 근무·후생 조건만 담겨 있어야 하나 교육 정책에 대한 사안이 포함돼 해마다 논란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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