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벙어리 냉가슴 民選단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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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4.11선거전이 시작된 이후 전국 시.도지사를 비롯한 민선 지자체장들은 본의(?)아닌 인고(忍苦)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역살림을 맡고 있는 단체장으로서 지역일꾼을 뽑는 총선이야말로최대의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지만 선거법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당적을 갖고 당선된 지자체장으로서 소속 정당후보의 개인연설회나 정당연설회 정도는 자발적으로 참석해 얼굴을 비치는 것이 도리겠지만 『얼굴만이라도 내밀어 달라』는 소속당 후보의 간청(?)마저 못들은 체 해야하니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들이다.이 때문에 일부 단체장들은 중앙당으로부터 『배신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질책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단체장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얼굴 한번 잘못 내밀어 구설수에휘말릴 경우 본인은 물론 소속당과 후보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기때문. 그런데도 한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그건 나중 일』이라며다그치기 일쑤여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는 푸념들이다.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의 경우 선거일 공고전 소속당인 신한국당 지구당창당대회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야당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은 이후론 공식적인 도정관련 행사를 제외하고는 유세장은 물론 크고 작은 일체의 모임에 발길을 끊고 있다.李지 사로서는당연히 경기도 지역에서 신한국당 후보의 압승을 바라겠지만 사소한 일로 구설수에 오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 때문에 태연을 가장할 수밖엔 없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다른 시장.군수들도 마찬가지.심재덕(沈載德)수원시장은 『소속 정당은 없지만 수원시내 3개 선거구에 출마한 20여명의 후보들이 저마다 차 한잔만 하자고 야단』이라며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선거법 핑계대고 꼼작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또 오성수(吳誠洙)성남시장도 『마음같아선 유세장 등여기저기 들러보고 싶지만 발이 묶이다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간에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아는 지자체장들의처세를 보며『정말로 세상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없었다. 〈수원에서〉 조광희 기동취재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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