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거미들의 화음" 전상국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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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선거란 무엇인가.
후보가 내뱉는 말,말들은 삶과 사회의 진실을 은폐,호도하는 것은 아닐까.
총선이 종반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선거와 정치의 본질을 해학적으로 파헤친 소설이 때맞춰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중진 작가 전상국(全商國)씨가 『문예중앙』봄호에 발표한 중편「개미거미들의 화음」이 그것.
全씨는 이 작품에서 화자(話者)인 소설가,주인공인 소설가와 동갑내기 삼촌을 통해 정치와 소설,그리고 사회적 진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50을 바라보는 소설가 종우는 소설에만 전념하기 위해 낙향한다. 때마침 종우의 막내 삼촌 한대도 뜨내기 생활을 청산하고 선거 출마를 위해 고향을 찾아든다.
어거지로 삼촌의 선거사무장을 맡아 소설가의 눈으로 선거의 본질을 찬찬히 따지고 있는게 「개미거미들의 화음」이다.
『박중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물노국교.수하중학교 졸업.
66년 토끼사건에 연루돼 정지고교 중퇴로 고향을 떠나 지리산.오대산.태백산등에서 수도생활 15년동안 고향 발전 구상을 끝낸 뒤 하산하여 귀향.
정지대학 행정대학원서 수학중.』선거 벽보에 붙은 한대의 이력이다. 선거법상 틀린 이력은 아니다.사생아로 태어나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를 몰래 잡아먹어 퇴학당한 뒤 전국을 떠돌다 귀향에앞서 행정대학원에 등록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실제 사실이 벽보로 활자화되면서 「연루」「수도생활」「하산」등의 도움으로 신화화되고 있다.
거기다 한대는 지방신문사.잡지의 대대적 인터뷰로 그 입산수도와 탁견지명의 신화는 현실화된다.
그 인터뷰에 정작 당사자는 쏙 빠지고 유명 작가인 조카가 끼어들었으니 신뢰성을 더한다.
작중 화자는 인터뷰에 응하면서 『소설이 아닌 방법으로 한 사람을 얘기하는 일인데도 소설 쓸 때의 그런 신명이 그 인물의 카리스마적 형상화에 작용하고 있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선거는 소설이 아니라 실제상황인데도 유권자들은 마치 소설가가된 듯 후보를 미화하고 신화화한다.
해서 결국 정치인이 아닌 정치꾼을 키우고 스스로 만든 「신」에게 표를 몰아 당선시킨다.
여기서 작가는 독자들,아니 지금의 유권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소설은 현실을 보다 나은 세계로 고양하기 위한 고민의 한표현으로 실제의 인물을 어느 정도 과장해 그릴 수밖에 없지만 정치꾼들은 고민이 아니라 광기로 세상을 호도하고 있다고.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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